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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긴 잠

나무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낙엽 하나 두울 날립니다   두 발을 뻗고 누웠습니다   그는 등을 내어줍니다   그의 숨결이 등을 통해 들립니다       푸른 하늘이 눈부실 때까지   봄의 연두가 살아날 때까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고   모르는 것은 그대로 놓아두렵니다   새봄의 새싹을 위해   무거운 겉옷을 벗어야 할 때   힘 빼고 두 손을 모아야 할 때   지울 수 없는 사계절 기억을   나무는 제 몸 속 깊은 곳에   한줄의 그리움으로 각인합니다   잠깐 피었다 지는 아쉬움이 아니라   짧게 말하고 오래 견뎌내는   익숙함을 넘어선 그건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는   찬란한 어느 봄날을 꿈꾸며       하늘을 밀고 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앙상한 나무는 긴 잠을 청합니다 나무는 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인내와 사랑을 보여 줍니다. 어떤 나무는 500년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살아온 시간과 환경 속에서 그 당시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말없이 한 자리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아쉬움의 순간들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어떤 나무는 심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명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무는 살아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뿌리를 뻗어 나가야 합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 올려 가지와 잎에 수분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나무는 힘들어하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수분뿐 아니라 적당한 양의 햇빛도 필요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에너지를 동물은 섭취한 음식물을 통해 몸속에서 소화함으로 얻습니다. 반면에 식물은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입의 기공에서 흡수된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햇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우리는 광합성작용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듯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나무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일부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죽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동물도,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살아남기 위해 제 몸의 일부를 떼어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으로 썩어 가는 다리를 잘라 내기도 하고, 한 쪽 팔을 떼어 내기도 합니다.   언덕을 오르다 쓰러져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버티고 서 있던 그 나무가 쓰러지고만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의 속이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아마 나무는 결심한 듯 자신을 쓰러트리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무가 보인 결단이고 마지막 사랑이라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나무뿌리 근처에서 물기를 먹은 새 가지들이 올라오고, 연둣빛 잎사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무의 등을 만져 주었습니다. “이제 긴 잠을 자려무나. 윗몸을 쓰러뜨리고 뿌리를 살리기로 한 너를 사랑해. 꿈을 버리지 않은 너를 기억할게.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우리 만나기로 해. 그때 힘 있게 뻗어 나갈 너를 기다릴게.” 언덕을 내려오면서 낮은 바람에 손 흔드는 작은 잎사귀들을 돌아보며 찬란한 어느 봄날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확연히 키가 커져 알아볼 수 없을까 봐 돌멩이 하나 놓아두었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뿌리 근처 사계절 기억 연둣빛 잎사귀들

2024-11-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거는 최면

가을을 반납했다는 G 작가의 글을 접하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시간과 계절을 내려놓았을까? 암 투병과 함께 지긋지긋한 통증에 약효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시면 글을 쓰고 있다는 G 작가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다. 가을을 반납하고서라도 써야 할 그 무엇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쪼록 그 글의 완성이 책으로 엮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이 온다   우수수 낙엽이 날려도 먼동이 트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햇살이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누군가는 짙은 커피 향에 취해   떠나는 계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그리울 때 갈대는 땅으로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꿈과 현실의 갈래길에서 한길을 택해   언덕을 내려오다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거기 나는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땅으로 눕는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꿈은 꿈 자체로 아름답다. 기쁨과 슬픔의 조건조차 현실을 인식하는 우리 내면의 의식에서 빚어진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상의 결과가 그 가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한다거나 스스로의 삶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늘 사람을 대할 때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사고로 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망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 이 지구상에 존재하므로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흰’을 읽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짧은 수필의 연결 같기도 하고 자세히 읽다 보면 깊은 시 같기도 했다. 흰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유들을 덤덤히 적어 간 그의 글 속에서 인간의 진진한 삶의 고뇌와 덤으로 살고있는 아픔과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속도보다는 방향의 진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이 때론 방향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자연의 변화처럼 천천히, 바른 방향으로 그렇게 물들어 가야 한다. 글을 읽는 내내 차분하지만, 영감이 자유로운 그의 내면을 송두리째 접할 수 있었다. ‘흰’의 마지막 소제목 ‘모든 흰’의 내용은 이러했다.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선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최면 새벽 언덕 노벨 문학상 시인 화가

2024-11-0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푸른 점 하나

이층 끝 방을 화실로 꾸몄다. 폭신한 매트와 방 안 가득 장난감에 쌓여있던 그 방을 정리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손주 둘, 손녀 둘의 사랑방이었던 그 방을 정리 해야겠단 생각은 아이들이 하나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던 작년 여름이었다. 그와 맞물려 한국에서의 전시가 예상치 못하게 잡혀 그림을 그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겨야 할 장난감들은 박스에 넣어 아이들 집으로 보내주었다. 드로잉 테이블을 들여놓고 이젤과 그림 도구들을 정리했다. 창문 옆으로 쉴 수 있는 작은 소파를 들이고 턴테이블과 LP를 챙겨놓으니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이곳이 나의 피난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 집을 지어 이사 올 때 심었던 매화나무가 이 층 창문을 훌쩍 지나칠 만큼 키가 자랐다. 매년 하얀 매화를 너무 한가득 피워 봄을 알려주었던 나무는 이제 스스로 나뭇잎을 다 내려놓았다. 어느 사이 잎을 떨군 가지마다 붉고 작은 열매가 빼곡히 자리 잡았다. 아마도 꽃이 진 자리마다 한 여름을 지나면서 조금씩 맺은 보람인 듯싶다. 동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아침마다 햇볕이 가득히 들어온다. 햇살 아래 작은 열매는 붉은 보석 같이 반짝인다. 드로잉 테이블을 창문과 마주한 덕에 붉어지는 나무의 변화를 날마다 바라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오늘은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다 지나가고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저마다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간혹 잊고 사는 티끌 같은 존재 푸른 점 하나로 날 사랑할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맹세하거나 정의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길 걸으며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 내 분량을 덜어낼 일이다. 그리하여 가벼워진 몸으로 당신에게 날아갈 일이다. 푸른 점 하나로 나의 페르소나를 벗어내고 있다. 아니 가벼워지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붓끝에 물감을 찍어 하늘을 그리고, 언덕을 그리고, 들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서정을 그린다. 우리의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기억하고 난 후, 기다리고 난 후, 아니면 사랑하고 난 후였을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수년이 되어 흘렀다. 밤새 기다리다 아침이 와도 때론 무뎌지고 닳아 없어진 어처구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날아갈 일은 나만의 고요를 찾는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이 밤의 고요는 새벽의 고요와 사뭇 다르다. 혼돈과 고요의 차이는 종이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 같다. 혼돈 속의 고요. 고요 속에 혼돈. 요란한 강물의 물들을 바다로 다 흘려보낸 후 찾아오는 적막과 흡사하다. 서둘러 도착해야 할 거대한 미시간 호수의 고요가 그립다. 훅 불면 사라질 티끌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할 존재이다. 맹세한다는 부질없음을 내려놓는다. 한없이 가벼워져 푸른점 하나로 날아 오른다.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간 후 기억이나 하겠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쏟은 시간과 열정과 땀방울을. 그럼에도 날 사랑할 이유는 오직 하나 독특한 나를 세상에 보낸 당신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그리고 밝아올 새벽의 고요를 기다리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드로잉 테이블 미시간 호수 그림 도구들

2024-10-2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요즈음은 참 좋은 세상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포장으로 판매되어 잠깐 끓이거나 마이크로웨이브, 에어프라이어의 버튼 하나로 먹거리가 준비된다. 맛도 있고 시간도 절약되어 사람들의 손이 이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음식은 역시 정성과 시간을 들인 손맛이 아닐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준 칼국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매운 고추와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마늘을 다져 넣은 양념장을 얹어 먹는 칼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멸치와 채소를 우려 만든 국물도 맛있거니와 면의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느껴지는 감칠맛은 요즘은 흔히 느낄 수 없는 손맛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밀가루 반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판에 붙지 않게 밀가루를 살짝살짝 뿌려주는 게 내 소임이었다. 어머니는 눈짓으로 여기에 뿌리라 하면 나는 손에 움켜쥐었던 밀가루를 때에 맞춰 뿌리곤 했다. 반죽은 어머니의 손에서 주물러지고 치대지고 간간이 뿌려지는 밀가루 투척과 함께 긴 막대를 이용해 골고루 밀어내다 보면 떡 덩이 같았던 반죽은 신기하게도 얇고 넓적한 판이 되어있었다. 이내 얇게 펼쳐진 반죽을 둘둘 접어 쓰윽쓱 썬 칼국수가 준비되었다. 잘했다고 손뼉 치는 손에서 밀가루가 펄펄 날려도, 얼굴에 분칠을 해도 마냥 기뻤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교회는 언덕 위에 있었다. 교회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버스 정거장과 시장이 보였다. 시장 앞쪽으로 상가가 있는데 왼쪽 귀퉁이에 중국집이 있었다. 성가 연습을 마친 후 가끔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단연 짜장면, 짬뽕이 인기 메뉴였다. 주문이 들어가면 이내 반죽을 탁자 위에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소리가 큰 지 그 소리가 식당 내부에 가득했다. 그 집의 면발은 쫄깃하다고 소문이 나 동네의 맛집이 되었다. 정말 쫄깃하고 식감이 있었다. 좀 시간이 지나도 불지 않고 탱탱했다. 나이가 지극한 주인은 늘 하얀 앞치마를 목에 걸고 요리를 만들면 아내는 손 빠르게 그 음식을 손님에게 서빙했다. 식탁 위에 놓인 짜장면 짬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던 것을 기억한다.   시카고에 정착해 살아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간다. 그 덕에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아프리카 자메이카 음식도, 히말라야 아래 작은 동네의 네팔 토속 음식도, 동유럽 폴란드 음식도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도 입에 붙을 만큼 입맛이 국제화가 되었다.     그 중 밀가루 음식인 파스타는 입에 잘 맞는 음식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는 매일 파스타를 먹었고 이제는 시카고 어디에서나 쉽게 파스타를 만나게 된다. 칼국수의 맛이 다 같은 식감이 아니듯 파스타 역시 다 같은 맛이 아니다. 그냥 만드는 것 같아도 장인의 숨결과 손의 온도를 버무려 지문 같은 파스타가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예술의 경지와 견 줄만하다.     단지 음식을 만드는 일 외에도 모든 일에는 열정이라는 에너지와 정성이라는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손의 따스함과 코끝의 향기를 더해 음식도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작은 밀가루 반죽이 여러 모양과 색깔의 파스타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것도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의 자세라면 어머니의 칼국수 맛처럼 그 삶도 맛갈나는 일상이 되지 않을까? 파스타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향기로운 시간들로 피어나지 않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밀가루 반죽 밀가루 투척과 이내 반죽

2024-10-2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 가을엔

이 가을엔 / 처음 듣는 언어를 배우려 하오 / 서로 다른 몸짓으로 / 움직이는 나무 그늘 아래 / 열병을 앓으며 붉어지려 하오 / 가까이 바라보는 계절 속에서 /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여린 색들을 잃은 후 / 잘리고 떨어진 자리마다 / 검고 딱딱한 살이 돋고 /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 답답한 우울을 벗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푸른 잎 흔들며 이별을 물어오는 / 가을 숲으로 떠나려 하오 / 매달려 흔들린 시간보다 더 아픈 / 영원으로 맞닿은 노스텔지어 / 붉어지는 계절이 지나는 하늘 가득 / 긴 꼬리 태우는 별똥별 여운 / 빛나지 않음으로, 잊혀져야 하는 / 빠르게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에서 / 작은 일도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쳐 / 되는 일임을 배우려 하오 // 이 가을엔 / 꽃 피우고서도 한참 지난 후에야 / 열매 맺는 과일나무처럼 / 두 번의 생명을 한 계절에 피우고서도 / 붉은 마음 장렬하게 토하는 / 삶의 뒤안에서 너 하나만을 위해 / 하늘 언어로, 붉게 물든 온몸으로 / 긴 여행을 떠나려 하오       가을이 오는 언덕에는 벌써 황톳빛 갈대가 바람에 온몸을 잔뜩 누입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을 향기는 코끝을 스쳐 잠긴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지난 계절의 더위와 끈적이던 피부의 물기를 단번에 증발해 줍니다. 생각하기 싫었든 아니 생각나지 않았든 잃어버린 기억의 순간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 잠깐 내린 비로 하늘은 까마득히 높아지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무의 잎들은 아침 햇살에 눈부십니다. 맑고 깨끗해진 거리의 잔디와 가을 국화와 코스모스도 한결 푸르게 살아납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말끔히 얼굴을 씻은 호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호수에 비칩니다. 호수를 돌아 나지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여린 노란색으로부터 진홍의 열정, 타오르는 듯 붉은 단풍까지 물들기 시작한 언덕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숲은 아름답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숲의 겸허한 마음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나무는 정직합니다. 속살까지 시원해지는 아침 바람은 나뭇잎의 색깔을 바꿔놓습니다. 봄날 피어날 연두의 새잎을 위해 붉게 익어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알고 사람보다 먼저 행동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깨어나 가을비를 맞고, 사람보다 먼저 익어갑니다. 앙상해진 나무, 잎을 떨군 자리마다 검고 딱딱한 잎눈을 만들고, 가지의 어딘가엔 꽃눈을 만들어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숨겨진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물을 찾아 잔뿌리를 내리고 마른 줄기에 수분을 공급합니다. 어느 봄날 연둣빛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지금 당장 결말을 지어야 편안한 사람의 생각보다 깊고 뜨겁습니다.     이 가을엔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 합니다. 모든 일을 빠르게 결정지으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불평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언덕 나무를 찾아가 배우려 합니다. 별똥별의 긴 꼬리가 사라지는 밤하늘을 봅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안다고 말하는 오류를 벗고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는 빈들의 기적, 뿌리를 기억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있기에 당신이 있고, 내가 없다면 당신도 없다는 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숲을 찾아가 무리 지어, 혹은 외로이 자신을 드러내는 들꽃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가을엔 사람의 언어보다 땅의 언어,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싶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당신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가을 향기 가을 국화 하늘 언어

2024-10-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

한 줄 나이를 먹으며 / 나무도 키가 크고 / 너도 깊어지곤 했지 /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 흩어진 물방울을 모으려 하면 / 쏟아지는 비가 되어 돌아오곤 했지 / 흠뻑 젖은 호수 위로 / 겹겹이 작은 파문을 만들고 / 네 위로 흐르던 하늘 / 보이지 않는 너의 심연 속으로 / 자꾸자꾸 내리다 보면 / 그대라는 마음 떨구지 못해 / 마음 한구석 화석으로 남아 /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재촉하곤 했지 / 책장을 넘기며 궁금한 널 찾아내려고 / 거울 속 길들여지지 않는 너를 향해 / 한 줄 주름을 그리곤 살아야 했지 / 만날 수 없는 네가 더 소중하고 그리워 / 하늘 먼 길 네게로 가곤 했지 / 호수엔 주름 하나 깊어지고       비가 내리는 호수를 향해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호수는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하늘은 둥근 호수를 향해 비를 뿌리고 있구나. 둘 중 누구 하나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구나.“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호수엔 파장이 셀 수도 없이 번져 간다. 파장은 모든 기억과 시간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려 한다. 불가항력의 원칙처럼 끊임없이 밀려지다 보면 호수의 턱에 걸치게 된다. 어느 사이 파장은 다시 호수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 곳으로부터 동그랗게 번지고 있다.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에서 다시 중심으로 반복하고 있다. 와중에도 물결 사이 사이로 하늘이 비친다. 그렇게 하늘은 호수로 내려와 앉고, 호수는 하늘이 된다. 서로에게 자신을 비추고 투영해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내 이마엔 주름이 세줄 그어져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발견하게 되었다. 눈가에 잔주름도, 입가에 팔자 주름도, 목에 늘어진 주름도 보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주름은 그날 생긴 게 아닌 것을 알기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야 했다. 햇빛에 눈을 찡그렸던지, 이마를 누르고 잠을 잤던 습관 때문인지 나도 모른다. 단지 오랜 시간 지나면서 훈장처럼, 상처처럼 만들어진 흔적, 나뭇잎에 단풍이 들듯 세월이 천천히 만들어간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호수의 주름과 거울에 비친 이마의 깊은 주름을 보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피카소의 고독했던 ‘청색시대’를 떠올렸다. 그의 창작기간 중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 청색의 하늘과 푸른 호수의 시간에 나는 푸른 얼굴을 가지고 기타를 치는 한 노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작품명은 ‘늙은 기타 연주자’이다. 마티스에게 빨강이 중요한 색이듯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황금색이, 초창기 피카소는 청색이 중심이었다. 피카소의 청색은 특별하고도 개별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청색은 밤의 색이고 바다의 색이며 하늘의 색이었다. 나는 이것에 호수의 색을 더하고 싶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생명과 열정을 표현하는 따뜻한 색이라면, 파란색은 깊고도 차가우며 허무와 빈곤, 그리고 절망에 직면한 고독의 색이었다. 블루는 캔버스에 칠해진 색을 넘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고독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고독 없이는 어떤 예술도 창조될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 고독을 지켜 왔다.”라고 그는 독백했다. 노인의 깊은 주름이 오늘 호수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수와 하늘이 하나로 투영되듯이 그는 깊고도 우울한 청색의 시간을 이겨내며 호수에 주름이 생겨난 이유를 알아차린 세기의 화가가 아니었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 주름 호수 위로 팔자 주름 오늘 호수

2024-09-3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들꽃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생각나   잔뜩 엎드린 너를 보려고   나도 잔뜩 엎드려 본다      너의 걸음과 나의 걸음의 행간   가까운 듯하였는데 여전히 멀어   네 소리가 듣고 싶어   네 옆에 산다   소음과 발길이 끊어진 들녘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들리고   나는 너를 보고 있다   하늘이 호수를 내려다보듯   어느새 웃고 있는 너의 모습   온 세상 사람이 웃어도   너의 웃음만 내게 들린다       고개 든 날보다 고개 숙인 날이 좋아   온종일 너를 향해 고개 숙인다   엎드린 네가 아프면 어쩌나   네 모습 자세히 보려고   기억 사라지지 않게 자꾸만 본다       습관처럼 고개 드는 것보다 고개 숙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 보이고 그들에게 애착이 간다. 때론 활짝 핀 꽃보다 꽃을 피우고 난 후 고개 숙인 들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 나지막한 들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들꽃. 화려하지 않고 탐스럽지도 않지만 다소곳이 피고 난 후 낮게 엎드린 모습에 나의 시선도 자꾸 너처럼 낮아진다. 언제 자랐는지 키를 키운 갈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부끄럽게 숨겨져 있다. 갈대숲을 헤치며 다가가면 부끄러워 고개 돌린다. 그렇듯 들꽃 한 송이를 발견하면 내 안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나는 별빛이 몰려와 어느새 나는 푸른 밤하늘이 된다. 너는 꼭 다른 행성의 별들이 떨어져 피운 다섯 모서리의 작은 별 조각 같다.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운 별빛 같다. 내 손에 너를 감싸면 조그만 네 얼굴엔 홍조가 띤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너는 가을 들꽃이다.     더위를 물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마른 풀밭에 생기가 돈다. 어디서 날아와 풀이 되었나? 무엇이 그리워 들꽃이 되었나? 꽃이 피고 또 질 때면 숲의 모든 눈들은 풀꽃을 본다. 숲의 모든 귀들은 작은 꽃들의 나직한 속삭임을 듣는다. 누구의 손이 스쳐 간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숲속 모두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쓴다. 지켜주고 안아주는 숲의 사랑을 느낀다. “조금만 더 견디어 내. 이제 하늘의 선물이 갈증 난 네 목을 적셔줄 테니까” 숲의 가슴은 넓고 포근하여 가을 길을 예비하는 단비를 맞이한다. 아주 작은 들꽃 하나에도 하늘의 선물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가을 들녘에 생기가 돈다. 서로에게 기대어 들꽃 한 송이 피어난다.     바쁜 하루가 지나간다.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보고 싶어 너에게 간다. 어느 들, 어느 모퉁이에 구부려 핀 너는 밀려오는 파도의 잔상을 기억해 내고, 그 안에 아직 남겨져 있는 더운 숨을 느낀다. 기억의 순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눈물을 본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침묵의 바다로부터, 무념의 숲으로부터. 바람에 스쳐 흔들리는 갈대 사진을 동봉해서 함께 피어난다. 가을이여 가을 들꽃이여 간절하면 보인다 지나쳤는데 간절하면 들린다 무심했는데 간절한 시간, 간절한 마음에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가 보인다 나의 그리운 이여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들꽃 가을 들꽃 가을 들녘 들꽃 하나

2024-09-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는 밤   숨소리 같은, 이어지는 초침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며 바다로 갔어       사막의 긴 그림자를 안았지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톱으로   두발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았어   떼어지지 않는 발이 천근이었어   긴 그림자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마주 보는 하나로 다 가진 빈들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어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 펼치고 / 삼층천을 품은 비밀의 정원에서 / 소리없는 울음 후 찿아온 한줌의 햇살 / 난생 처음 가진 소박한 꿈 / 빈들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 비우고서야, 내려 놓은 후에야 /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 / 별들이 내려앉은 꿈의 들꽃 / 바람따라 흔들리는 들풀의 춤 사위 / 주고만 싶은 들녘의 가슴은 타오르는데 / 지친 허리를 펴서라도 너를 안아야했어 / 언제, 어디에서, 어디쯤 우린 기억될까 / 한잎 단풍속으로 가을 발자국 들려 오는데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고   사라져 가는 그의 숨소리 같은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는   바다로 갔어       계피향 가득한 Oat creamer를 잔뜩 넣은 커피 한모금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하루가 밝아오는 새벽은 늘 다시 세상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대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하늘이다. 구름이 덮혀 있나? 아니면 한점 떠 있지 않나? 밝아오는 하늘색을 살핀다. 아직은 붉은 먼동이 번진다. 커피 한잔 들고 덱크로 나와 뒤란을 걷는다. 눈이 마주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씨를 뿌려 모종부터 키운 백일홍이며, 스스로 도생한 과꽃도 살랑 흔들며 눈맞춤을 한다.   하루가 지고 하루가 열리는 것. 아직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빈들에 문이 열리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득한 기억으로 문이 닫힌다. 일상 맞이 하는 하루라는 시간. 무심한 초침의 기계음처럼 반복해 오고,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 꿈속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열린다. 덱크의 문을 열고 나오면 하루가 열리듯, 부지런한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 숲이 되어진다.     나의 어깨에도 날개가 자라나 깊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바람의 소리며, 바닥까지 눕는 들풀의 순종을 배우고 싶다.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을 이어 빈들은 거대한 켄버스가 된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생명이 자라 각색의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의 날들도 그러했다.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한줌의 씨앗이었다. 제 일어나라는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빈들로 문을 열고 빈들로 문을 닫아야 했다. 보상이 없는 선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시간,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매일 매일 감춰진 행복의 두루마리를 내려주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이끄는 그곳으로 손을 잡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과 손짓하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야 하리. 그리하여 들꽃이 되고, 붉은 노을 언덕이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하리.       문이 닫히고 한밤이 될 때 /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 / 아무도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그 시간을 빠짐없이 기억해내 / 목이 좁은 호리병에 넣어 바다로 갈꺼야 / 거기서, 흔들리는 파도에 떠내려 / 작은 오두막, 당신의 손에 닿을꺼야 / 나는 다시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 작고 하얀 들꽃이 되어 / 당신의 손에 드리워진 선물이 될꺼야 / 출렁이는 파도에 내려 앉은 붉은 노을이 될꺼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리병 바다 퀼트 조각 커피 한모금 노을 언덕

2024-09-1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힘이 있고   움직이는 것이   정지된 것보다 강하다       부드러운 싹이 동토를 뚫고   가느다란 뿌리가   바위를 무너트린다       강한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하지만   부드러운 햇살은   겉옷을 벗게 한다       움켜쥔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외압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율이다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새는   날갯짓의 수고보다   바람에 기대어 날기에   두려움이란 힘을 빼고   나를 맡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경계를 긋거나   담을 세우지 말라   이것들은 돌아서 당신을 가두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언어를 빼앗기게 된다      어떤 강한 말보다   조용한 문필의 힘이 강하다   그리고 명사보다 동사가 강하다   그리하여 명명되지 않은 시간에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기대어 긴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       미시간 호수를 산책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을 보았다. 하얀 깃털이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바다 갈매기도 보이고 작은 물새도 간혹 눈에 띄었다. 모래 위 세 갈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덩치가 꽤 큰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호수 가까이 날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를 보면서 두 발로 디딘 땅을 떠나 결코 날 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수면 위 높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나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걷고 있냐고.    독서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깜한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 몇 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속에 나왔던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를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새는 힘겹게 싸운다. 마침내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고와 노력도 이와 같지 않은가.     바보 갈매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바보 갈매기의 이름은 알바트로스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새는 타조이지만 타조는 날 수 없는 새이기에 세상에서 날 수 있는 짐승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연 알바트로스이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다. 길고 폭이 좁은 날개를 편 채 바다 표면에 생기는 풍속 차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어느 새보다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오른다. 커다란 날개로 미끄러질 듯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단 한 개의 알을 낳아 암수 교대로 알을 품는다. 새끼는 성장이 느리지만 수명은 30년 이상이나 산다. 한 마리의 짝과 평생 어울려 다니는 독특한 생태가 특이하다. 아마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나는 데에는 한 마리의 짝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내려앉으면 큰 날개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하늘에 오르면 폭풍우 속에서도 가공할 만한 용기와 담력으로 고도의 추진력과 힘을 얻어 속도와 높낮이를 자율 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삶은 그 속에서 견디며 단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시련과 폭풍우 속에서도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 더 높이 더 멀리 역경을 헤치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새 알바트로스처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알바트로스 갈매기 바보새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바다 갈매기

2024-09-0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입에 넣은 사탕은 달콤했어요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고요   손을 뻗어도 당신은 내 곁에 없어요       소란한 삶이 싫어 이곳에 왔어요   열 번쯤은 떠나왔고 몇 번은 도망쳤어요   멀리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잔가지에 걸린 하늘이 아득히 번져와요   꽃 한 송이 피워 당신께 가려고요       길에서 넘어진 노을을 주웠어요   흥건히 핏빛 되어 하늘에 걸려있어요   가까이 가면 뒷걸음치는 꿈을 꾸어요       우린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어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이어요   서쪽 창가 물들은 고요는 아직 따뜻하고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까지 밀려오고 있어요   하늘로 날아간, 슬픔 안으로 숨어버릴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만 다정해요. 앉아서 바라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서서 보려고 해요. 아침이 밝아 오는 호수 그리고 하늘, 하얀 물새들과 반짝이는 조약돌, 밀려오는 파도가 아름다워요. 이 세상을 떠날 때, 크고 위대한 당신 앞에 설 때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도 가끔 하곤 했어요. 바라보지 못한 풍경, 만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한 사연들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친구들의 이야기들과,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물새들의 대화와, 하얀 거품을 물고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의 사랑과 속삭임이 그리울 때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 바다 끝 어둠을 뚫고 붉은 몸짓이 연기처럼 아니 안개처럼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수평선으로 번져 가는 붉은 하늘은 아주 크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떠 오르고 있어요. 육안으로도 보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수면 위를 차오르고 있어요. 호수가 낳은 신비한 알 같아요.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프락사스의 몸짓 같아요. 이제 그 몸이 미시간 호수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해요.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하루가 떠올랐어요. 신기하기보다 경이로워요. 하루가 떠오르는 동안 고요는 모든 것들의 입을 잠잠히 정지시켜요. 멀리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가 쓸려 왔다 빠져나가요. 호수의 표면에 새의 깃털 같은 윤슬이 반짝거려요.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되고 있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와 하늘이 마땅한 곳에 연분홍의 띠가 수평선 가까이 드리워져요.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기 시작할 때쯤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호수의 수평선 위로 붉은 물감이 퍼지듯 번져 갔어요. 느린 동작같은 풍경 속에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낮이 밤으로 천천히 바꾸어 지고 있어요. 수평선 위에 띠처럼 번져 오던 노을은 벌써 하늘의 반을 덮어 가고 있어요. 그 반대편으로 하얀 보름달이 외롭게, 겸허하리만큼 의연하게 노을을 바라 보고 있어요. 이 풍경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요. 닮고싶은 풍경이에요. 일출과 일몰 사이로 하루라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어요.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노을이 되어 가요. 노을이 지듯 우리의 삶도 저물어 가겠지요. 그러나 낙담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앞에 형형색색의 별이 뜰 거예요. 캄캄한 밤하늘에 등불이 되어주는 별들의 대화가 한창일 거예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당신의 길을 비취겠지요. 베개를 끌어안은 당신에게 잘 자라고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겠지요. 뭇별들이 수를 놓으며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유독 당신의 새벽 창에 끝까지 남아 곤한 잠자리를 지켜줄 별빛 하나 보이겠지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노을 미시간 호수 때쯤 하늘 수평선 위로

2024-08-2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홀로서기

홀로 피었다   바람에 흔들려 구겨진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 못 했지만 현실이었다   구겨진 얼굴 피기가 쉬웠겠는가   흔들리는 갈대가 하얗게 울음을 터뜨렸다   비바람 앞에, 천근의 무게를 지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설 때   정면으로 부딪칠 때 그때 비로소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홀로 핀 당신만 보인다   쏟아 내지 않고 별빛 하나로 모이는   그곳에 서 있어 보면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같은 걸음을 옮길 때   외로움은 멀어졌다   결국 그 힘은 뿌리에 있는 것이다   당신 앞에 날마다 서는 그 힘은   홀로 견디는 그 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라. 홀로 핀 것들이 너만이더냐. 시름시름 꽃대를 세우더니 백일홍도 홀로 피었고, 씨 뿌리지 않은 과꽃도 여린 꽃망울 홀로 맺었고, 망초도 담장 구석에 기대 안개 같은 하얀 꽃으로 홀로 활짝 웃었다. 그뿐이더냐. 수백 광년을 지나 발밑 아래 홀로 부서지는 별빛은 그냥 서서 맞이하기엔 얼마나 눈물겨운가.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은 또 얼마나 포근하고 따사로워 온몸을 녹이지 않던가.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가 홀로 제 몸을 벗었고, 딱새도 홀로 밤낮으로 알을 품더니 올망졸망 제 식구를 데리고 춤추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홀로 견디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어렴풋이 홀로 사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가 홀로 되신 후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홀로 견디고 홀로 사셨다. 그리고 홀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초에 불을 댕기면 심지가 타면서 불꽃이 보인다. 심지가 곧게 깊이 박혀 있으면 불꽃은 오랫동안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나무도 그 뿌리가 깊게 뻗어있지 못하면 비바람, 눈보라에 쓰러지게 된다. 아무리 버티려 해도 제 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홀로 서려면 그 뿌리가 깊어야 한다. 홀로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그 심지에서, 그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무성해도 홀로 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다.     나무가 눈을 뜨는 시간에 나도 눈을 떴다. 나무는 자신이 심어져 자란 곳을 불평하지 않는다. 오늘도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지를 휘며 살아감의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깊은 땅을 향해 뻗어 가고 있겠지. 서 있다는 것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하루를 그냥 맞은 게 아니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두렵고 떨리는 하루를 그림자처럼 지내셨다. 노을마저 져버린 서쪽 창가에 어둠이 찾아오면 지친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을 저몄을 것이다. 잠든 네 자녀의 이마를 쓸어주며 기도 반, 눈물 반으로 지샜을 것이다. 나는 안다. 그 먹먹했을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 고통스런 날들을 견디며 고개 숙이지 않은 것들에겐 향기가 난다. 그래서 난 홀로인 것들이 좋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 홀로 견디어낸 시간이 자랑스럽다. 홀로여서 외롭다고 생각지 마라. 사람도 홀로 있을 때 가장 사랑스럽지 않더냐.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비바람 눈보라 얼굴 피기 시인 화가

2024-08-1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저녁이었어   너의 서 있는 자리, 그리고 노을이었어       깃털의 날림 같은 공기를 밟으며   무심한 듯 가볍게 날아오르고 있어   잎사귀에 구르는 이슬, 긴 가지마다   써 내려간 너의 노래, 그리고 몸짓이었어       서둘러 모아지는 잔가지들의 유희   아쉬움에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     너의 향기는 새벽을 깨우는   이슬이었는데   봄볕같이 스며드는 따뜻한   엄마 손이었는데   안겨 오는 바람처럼   흥겨웠던 날이었는데       돌아오는 차창 안으로 별이 스미는 날   내 힘으로 걷기 힘든 날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에 오랫동안   너의 이름을 부르던 날       오늘이 내일이 될 거야   내일도 오늘이 되어 지나갈 거야   기억이 차오르도록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생생한 기억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돼       높은 갈대숲도,   불어오는 바람도,   굽이치는 강물도,   너의 깊은 숨소리도   먼 길 돌아 스친다 해도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이창봉 교수(Chicago 시 창작 캠프)의 12번째 강의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어제 시작한 듯 느껴지는 문학 캠프가 이제 막바지로 가까이 가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갈증에 단비처럼 다가왔던 시 창작캠프 20명의 열린 마음들이 마음을 열고 강의에 임했기에 곳곳에서 시심이 터지고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주변에 진동하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감추었던 마음의 표출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누구를 위함도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다. 새로운 아침이 깨어나고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따사로움이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구름의 하얗고 푸르른 소망의 창들이 바깥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이 질 때까지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하나가 되었다. 노을을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단단히 잠가 놓은 눈물샘이 터지듯 감성이 터져 나왔다. 신기하고도 새로운 시간들이 어느 사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껍데기를 결코 바꾸지 못하는 카이로스의 시간. 감겨 있던 눈이 떠지고 닫혀 있던 귀가 열리고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동토의 땅이 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거둘 수 없던 마음 밭에 나도 모르는 사이 씨가 뿌려졌고 햇살과 비와 새벽이슬로 싹이 솟고 줄기와 잎사귀를 보이더니 단단한 꽃망울 피워 내기 시작했다. 머지 않은 시간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마다의 꽃들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이제 새것이 되었다.” 성경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시 창자 캠프 동안 웃고 떠들고 서로의 벽돌을 허물어 가면서 시인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시 창작 캠프의 일환으로 1박2일의 문학 기행이 미시간 호수가 펼쳐지는 호변 에어비앤비에서 시작되었다. 간밤에 쏟아졌던 바는 마치 하늘 문이 열리고 퍼부었던 폭우였다. 어두운 호수가 밤새 일렁이고 번뜩이는 섬광 속에도 불구하고 새벽은 오고야 말았다. 모두가 일출을 기대했지만 구름에 가려진 해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일찍 깨어나 해변을 걸었고 간혹 구름을 헤집고 살짝 비친 붉은 하늘에 탄성을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발을 굴렀다. 새벽을 단장 하고 기다리고 있던 호수는 선물처럼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려 주었다. 새벽을 맞는 창문을 말끔히 닦고 찬물에 얼굴을 씻고 유인 반짝이는 눈망울로 새날을 기다릴 일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고 슬픔에 가슴을 조였던 사람에게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애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할 일이다. 소란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호수 가득 내려앉은 고요를 꼭 닮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미시간 호수 창작캠프 20명 창작 캠프

2024-08-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파도 1       파도는 곡선으로 오지만   때로는 직선으로도 온다   직선으로 와서 내 몸을 밀어   모래알처럼 쓸어 내기도 하고   자갈처럼 울음을 터뜨리게도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직선을 이루며 하나가 되었다. 호수에 가득한 파도가 멀리서 밀려오고 있다. 손짓하듯 잔잔한 거품을 물고 해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눈길을 고정하고 파도의 이동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파도의 물결이 생겨나고 어느 사이 서 있는 발밑까지 적시며 세차게 밀려오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 앞에 서면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높은 나무 위에 여러 마리의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며 하루를 즐거이 맞이하고 있다. 멀리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어디에서 오는지 여러 마리의 새 떼가 함께 모여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지난밤 거칠게 퍼부었던 비와 간간이 번뜩였던 섬광과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파도와 함께 시간의 조각들이 흩어진다. 그 조각들은 윤슬이 되어 호수의 표면에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고 있다.   도대체 이 호수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누가 이처럼 충만한 물결을 물려 오게 했을까? 지난밤 퍼붓던 빗물이 호수의 수위를 높인 탓인지 거세게 모래가 밀려오고, 또 쓸어내리고 있다. 굵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파도의 울음소리같이 들린다. 만물이 주로부터 지어져 다시 지은이에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수천수만 년 전 아니 이 땅이 지어지고 이 우주가 지어질 때 까마득한 창세로부터 밀려오고 밀려갔던 파도가 오늘 이렇게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한 것, 연약한 것만을 바라보며 실망하고 좌절했던 우리의 모습.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 아닌가. 파도를 보라. 그의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을 보라. 밀려오는 당당한 그의 허리를 보라. 눈을 들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든 풍경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어제가 아니고 오늘이다. 우리의 삶에서 끝이라는 개념은 지워져야 한다. 지금까지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서 꼭 마지막 날이 될 것만 같은 어둠의 밤이 지났다. 아직 남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동이 트고 있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직선의 화살을 쏘아 내리고 있다. 어둠을 뚫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어둡던 마음에 문이 열리고 다시 먼동이 트고 새날이 밝아 오고 있다. 지난밤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조금의 빈틈도 없이 시계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듯 호수는 제 자리를 찾았다. 새날이 밝아 오면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호수,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모래의 쓸림도, 자갈의 울음도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호수의 사랑은 오늘도 아름답고 또 새롭다. 윤슬이 보석 같이 빛나고 하얀 거품에 물방울이 생명으로 가득 찰 때 내 속 가득 차오르는 감격의 선물을 어찌 감당해 낼까?       파도 2       눈을 피해 살며시 다가오는   너의 손끝을 보고야 말았다   너는 나에게 잊힐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로 가서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이 되고싶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미시간 호수 섬광과 하늘 밀어 모래알

2024-08-0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고향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아서, 스며드는 솜사탕 같아서, 언젠가 마주했던 싱그런 파란 바람 한 점 같아서,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 닦아 주는 엄마 눈물 같아서, 누군가에게 달려가 전해 주고픈 반가운 편지 같아서, 깨어 보니 멀리서부터 온 굽은 인생길 같아서, 길 따라 소담히 핀 들꽃 같아서, 무심히 걸었던 가로수길 느티나무 그늘 같아서, 붉게 피었다 이내 자취를 감춰버리는 서글픈 서쪽 노을 같아서, 하늘 멀리 달아나는 연 꼬리 따라 마냥 뛰었던 숨 가쁜 오솔길 같아서, 싸리비로 쓱쓱 쓸어낸 말끔한 안마당 같아서, 숲길 오르다 잠자리 날갯짓에 걸음을 멈춘 까까머리 친구 뒷모습 같아서, 뿌리치지 못한 애정한 손잡음 같아서,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 같아서, 그렇게 또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저미고, 그래서 또 다지고, 어느 사이 가슴을 열게 하는, 바람 불어오는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엄마 누운 한 평 남짓 로즈힐 세미토리, 먹먹한 그리움으로 유년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소식 끊긴 친구 얼굴 흐르는 구름에 밀려가는, 노랑 보라 잔잔한 들꽃들이 반갑게 손짓하는, 노랑나비, 흰나비 한 쌍 날개 겹치며 뒤뚱뒤뚱 언덕 넘어 사라지는, 그 숲길에서 나를 잃고 너를 잃어버리게 되는, 노을 그 깊은 회한의 물감이 별빛에 풀어지는, 싸리문 열면 정갈한 장독대 그 옆 기슭에 앉아 편지를 읽는, 그림 하같은 풍경을 집안에 가득 들여놓고 잠들지 못하는, 그렇게 또 그래서       물병에 들꽃   한나절 햇살은 지고   싸리문 열고 들어온 노을과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       나에게 흐르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고요를 모두 내어 드리이다   가슴을 풀으려니   그 자리에   한 송이 꽃으로 오시오       나에게 오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 하리다   두 팔을 뻗으리니   그대 떨리는 별자리로   파랗게 손짓해 주시오      나에게 별이 뜨고   소리 없이 밤이 오고 있소   내 그대를 향해   숲이 되어 흐르리니   내 눈 가득   그대 어디라도 오시오   그렇게 또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단의 끝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작은 실개천이 강물로 이르고, 강이 바다 향해 흘러가듯 계단 끝에는 이상의 존재 고향이라는 아득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날마다 고향을 향해 한 계단만큼 가까이 가고, 호수에 풀어놓은 달빛은 헤어진 기억을 어루만져 올이 풀린 고향의 등을 도닥거리고, 훤히 드러난 시간을 견고한 위로의 손으로 도닥여 준다 고향이라는 위로는 풍랑 이는 바다 한가운데 높은 파도에 깊은 심지의 뿌리를 내리고 다시 살아나고,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닮지 않았다 봄이 겨울을 닮지 않았듯이 생소한 너의 얼굴에 하얀 포말의 바다가 보이고, 가보지 못한 외로운 섬이 보이고, 싸리문의 작은 집이 그리움으로 보인다 저만치에서 고향이 손짓하고, 나를 부르고, 겨울나무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그려보고, 그렇게 또 그래서       눈이 떠지고   귀가 뜨이는 거야   터지고 트여   보지 못한 것이 보이고   듣지 못한 것이 들리는 거야   그렇게 또 그래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들꽃 한나절 친구 얼굴 노랑나비 흰나비

2024-07-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 피우는 당신

꽃 피우는 당신       그대 독백 나를 저밉니다   나의 등 뒤로 안겨 와   땅거미 밀리는 아픔입니다       그대 몸짓 날 일으킵니다   너무 멀리 흔들리는 불꽃   심지로 타는 눈물입니다       밤 지나 햇볕과 바람   살 햇볕과 무심한 바람   기억을 주우러 간   밤과 아침 사이   푸른빛 하늘을 그리고서야   부서진 마음에 닻을 내리는   아픔이란 이름으로 자꾸   꽃피우는 당신입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시카고 문학 캠프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오신 이창봉 교수를 환영하러 오헤어 공항에 나갔다가 함께 차로 돌아와 보니 왼쪽 앞바퀴에 부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함께 나갔던 박 회장, Jay님에게도 미안했지만, 시카고에 도착한 첫날 짐도 풀기 전에 차가 움직일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을 목도한 이 교수에게도 미안했습니다. “Uber를 불러 먼저 이동하면 좋겠어.”라는 나의 말은 귓전에 두고 “아니야,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자.” “같이 가자.” 팔을 잡아주는 동행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Office가 다행히 공항 롱텀 파킹랏 근처에 있었습니다. 물어 물어 공항 기차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그곳에서 롱텀 Parking lot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Office에 도착했습니다. 수년 전 내지 않았던 티켓이 몇 장 있었고 거기에 부츠값 100불을 포함한 돈을 지불하고 다시 차가 있는 Parking lot으로 돌아와 보니 부츠는 그사이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이 교수가 도착한 시카고에서의 첫날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참 즐거웠습니다. 오헤어 공항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껄껄거리며 여기저기 물어가며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단 40분 만이었습니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이었지만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히려 기뻤습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세상살이, 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한 걸음 물러나 차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문제는 쉽게 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에 살아온 지 오래지만 흔치 않은 일 이었고 손님을 맞는 오헤어 공항이라는 특별한 장소여서 더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움직이겠다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은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꽃으로 피어나 모두의 마음에 웃음을 안겨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은 좋은 환경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무거운 것과 나를 조이는 굴레를 벗어 놓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힘겹게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사실 고민하고 힘들어한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나고, 부딪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때 중요한 키 포인트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은 생각 그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손을 내밀어 표현해야 하고 가슴을 열어 안아주어야 합니다. 험한 길을 함께 걸어 주고, 비와 눈길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이겨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살아가야 할 날이 살아왔던 날보다 짧은 사람들에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은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에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 환경이 어렵다고 나아진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면 결코 그 사랑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나는 감사한 일을 겪으며 몇 가지 사실을 나 자신에게 당부했습니다.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살 것. 무거운 겉옷을 벗고 가벼워질 것. 행복한 뒷모습으로 하루를 마감할 것. 작은 몸짓, 작은 생명들에게 눈맞춤 할 것.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환경과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 이 모든 것들이 남은 날의 숙제임을 기억할 것.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오헤어 공항 시카고 문학 공항 기차

2024-07-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직 꿈이야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설명이 되지 않는 어떤 날은 깊은 물에 잠기고 말아 / 힘껏 뛰어도 멀리 갈 수 없는 / 발이 땅에 붙어버린 꿈을 꾸기도 해 / 꿈을 꾸며 나에게 말했어 아침이 보고 싶다고 / 빨리 말하고, 천천히 걷고 싶은 오솔길은 멀지 않은데 / 새가 노래하는 아침은 더디 오고 있어 / 두 발자국 걸으면 한 발자국 뒤돌아보는 밤 / 발이 땅에 붙어 걸을 수가 없었어 / 텔레파시를 네게 전송하는 아직 밤이야 // 꿈속에 떠다니던 단어가 맞춰지고 있었어 / 먼동이 오고 있었으니 / 큰 물결, 작은 파장, 수평선 붉은 해 / 거대한 호수의 가슴에서 빠져 나오고 있어 /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의 날갯짓처럼 / 새벽을 기다렸던 물새가 날고, 나는 입을 꼭 다물고 / 천국의 문을 통과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 왔던 길을 되돌아 가슴보다 큰 태양을 안아주었지 / 차갑기도, 뜨겁기도 한 태양이 부딪히며 안겨 오는데 /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잃어버린 단어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아직 꿈이야 / 날마다 내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인다. 곧게 뻗은 길도 보이지만 구불구불 어지러운 길도 보인다. 늘 평탄한 길을 걷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위로에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나는 오늘 어떤 내가 되어가는가?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라. 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체로키족의 구전이다. 과연 내가 나를 알까? 안다면 얼마나 알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밀한 존재인가? 측은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위에 서 있다. 언덕 아래로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풀숲 같기도 한 나무들이 희끗희끗 보이는 지붕 사이에 끼여 서 있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꼬랑지를 맞대어 지나가고, 그 옆 인도에는 신기하게도 개미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져 있다. 그 무리 중 혹 한 사람이 멀리 언덕 위에서 어떤 사람이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의 다른 위치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공유몽’이란 단어가 있다.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오래 소식이 없던 친구를 생각했는데 그 친구에게 불현듯 소식이 오거나, 어떤 사람과 우연히 여러 번 마주치게 되어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을 통해 가장 필요했던 정보를 얻게 되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이처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의미 있는 일치를 종종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원리와는 다른 시간과 의미로 연결된 무 인과적인 원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꿈 속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꿈 속에서 텔레파시를 경험하는 것은 가족, 친척, 친구, 애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흔히 보고되는 현상이다. 깊은 감정과 정서의 교류가 있을 때 텔레파시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꿈을 연구한 학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나 재해로 헤어진 부모와 자식 간, 연인들이나, 비슷한 종류의 깊은 공포나 열정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꿈에 텔레파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깨어 있을 때 이성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꿈에 텔레파시는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의식에서 배제하고, 현실에서 금기로 여기고 무시한 것들이 무의식에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현대인의 꿈에 텔레파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반복되는 꿈이 의식이 일상에서 알아야 할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된다. 꿈을 꾸면서 내가 꿈속에 있다는 걸 의식한다면 꿈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꿈을 깨는 순간 사라지게 되지만 그 상황은 어떤 모양으로든 의식의 깊은 창고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떼어낼 수 없다. 불현듯 장자의 호접지몽(나비의 꿈)이 생각나는 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꿈속에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메리칸 인디언 파장 수평선 언덕 아래

2024-07-1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담장이 앞에서

    담장이 앞에서     기대어 얼굴을 부빈다   따뜻한 손을 펼치며 마음을 다지며 키를 키우고 햇살 향해 하늘을 오른다 가로막히면 피해 가고,   떨어지면 매달려   바람에 살랑이며 춤춘다     인생 좌우명 같은 삶   겨우내 숨을 고르고   어느 봄날 기지개를 켜고 여름내 거침없이 자라고 있다 가파른 담벼락, 고목을 오르며 반짝이는 초록 얼굴을 뽐낸다     그대 앞에서 배운다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또 얼마나 진지했는지 그대 손바닥 같은 잎사귀로 덮어주고 포옹해 줬는지 힘들고 캄캄한 삶의 회한 흐르는 눈물 닦아주었는지     그대 앞에서 다짐한다 감추고, 가리지 않겠노라고 모자이크 같은 한 조각 인생 푸르게 채워 가겠노라고 치열한 삶 저 담장 너머로 힘차게 뻗어 가겠노라고     찬 바람 불고, 흰 눈 내려 그대가 잎사귀를 움츠리고 더 단단히 담장을 붙잡을 때 나도 인생의 추운 고비마다 흰 눈을 꽃잎처럼 맞으며 꽃 피울 봄날을 맞을 거라고     굳어진 열 개의 손가락, 앞을 가로막는 높은 담장 깊은 숨으로 푸르게 채워   하늘 향해 꽃 피울 거라고 그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늘이 흐리고 구름이 모여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비 내리는 오후, 나무도 풀도 꽃들도 비를 맞고 있다. 나무 둥지를 타고 오르는 담장이가 보인다. 담장이 잎사귀가 빗물에 반짝인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린다. 북쪽으로 향한 창문과 18세기 풍의 지붕과 네덜란드풍의 다락방과 방세가 싼 집을 찾아 헤매 다녔다. 나지막한 삼층 벽돌집 꼭대기에 수와 존시는 화실을 차렸다. 예술에 있어서 치커리 샐러드나 예복 소매의 취향에서 서로의 기호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희망에 부풀었던 존시에게 폐렴이라는 병마가 덮쳐 왔다. 존시는 페인트칠한 철제 침대에 꼼짝 못 하고 누워 네덜란드풍의 조그마한 창으로 이웃 벽돌집의 텅 빈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뿌리가 썩은 해묵은 담장이 덩굴이 벽돌담 중간쯤까지 뻗어 올라와 있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담쟁이 잎은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이 허물어져 가는 벽돌담에 매달려 있었다.   “조금씩 빨리 떨어지고 있어. 남아 있는 잎을 세고 있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이젠 쉬워. 또 하나 떨어지네.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잎뿐이야” “어, 또 한 입 떨어지네. 어두워지기 전에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러면 나도 죽는 거야.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저 가엽고 지쳐버린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리고 싶어”     맨 아래층에 베어먼이란 화가가 살고 있었다. 베어먼은 예술에서 낙오자였다. 40년 동안이나 붓을 쥐고 살아왔지만 예술의 여신 치맛자락도 잡아 보지 못했다. 수는 베어먼에게 존시의 터무니없는 망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약해진다면 존시는 가냘픈 나뭇잎처럼 둥둥 떠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존시는 잠들어 있었다. 창밖에는 싸늘한 진눈깨비가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존시는 흐릿한 눈으로 내려져 있는 녹색 커튼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었다. “보고 싶으니까 올려 줘.”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담벼락에는 아직도 담장이 잎 하나가 뚜렷이 붙어 있지 않은가? “마지막 잎새야.” 그 후로부터 존시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날 오후 수가 침대로 다가가 보니 존시는 누운 채 쓸모 없던 파란 빛깔의 털실로 숄을 짜고 있었다. 존시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수는 존시를 껴안았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셨대. 겨우 이틀을 앓고 말이야.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가 왔고 초록색과 노란색 그림물감을 푼 팔레트와, 붓 몇 자루가 흩어져 있었다는 거야. 존시! 저 담벼락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 좀 봐 바람이 부는 데도 흔들리지 않아. 존시! 저건 바로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야.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날 밤에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 놓으셨던 거야.   이렇게 〈마지막 잎새〉의 단편은 끝이 났다. 고귀한 생명은 이렇듯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하고, 이렇게 숭고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담장이 담장이 잎사귀 담장이 덩굴 베어먼 할아버지

2024-07-0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자전거 예찬

무릎이 까이며 자전거를 탔던 시절이 있었지요. 넘어져도 아픈 줄 모르고 히죽히죽 웃고, 일어났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나비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강둑에 핀 데이지에 정신이 팔려 노을이 지는 줄도 몰랐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르고 마냥 페달을 밟으면 새로운 풍경이 시야에 나타나고 또 사라지곤 했지요. 바람이 얼굴을 만지며 지나가면 송송 맺혔던 땀방울이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엄마가 부르는 소리는 아득해서 달빛이 가로등보다 환해질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지요. 잔잔한 시내도 가뿐히 건너고 황량한 들판도 나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신세계였어요. 꿈속에서도 별이 총총 떠다니는 하늘을 이곳 저곳 찾아다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 꺼진 우리 집이 까마득히 보였어요.   집 앞 공원에서 한 청년이 아이들과 놀고 있어요. 햇볕이 좋은 봄날이었을 거에요. 열심히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다 흔들리는 자전거를 살짝 잡아 주기도 해요. 복사꽃이 눈처럼 날리는 공원길을 흔들흔들 위태롭게 자전거 두 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아오곤 해요. 나는 알고 있어요. 높은 키의 전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저 돌아가는 길에서 넘어졌을지도 몰라요. 노란 달맞이꽃을 바라보다 넘어질 뻔했을 거에요. “자전거 뒤를 잡고 있으니 걱정 말고 페달을 밟아. 넘어질 리 없어.” “아빠 잡고 있지요? 꼭 잡아야 해요.” 잡았던 내 손이 떨어지고 자전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어요. 힐끗 돌아보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와 함께 번지던 자신감이 햇살과 함께 따뜻하게 밀려왔어요.       바람이 오는 길   세월이 가는 결 하늘이 열리고 내려앉은 밤 별 어둠은 깊어서 스치는데 풀, 나무, 숲도 한 호흡   바람에 소리 없이 깊어지고   안개처럼 뿌려지는 고요      초록을 따라가는 길 얼굴을 말끔히 씻고 새벽으로 오는 이슬 같은 노오란 달맞이꽃 피어나는 앳된 봉오리 걸음을 멈춘 생각     밤새 뒤척이던 나뭇잎 사이 먼동으로 깨어나는 하늘     흔들리며 오는 그대는     낯선 길에 있어요. Chicago에서 멀리 떨어진 Wisconsin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어요. 이 나이에 자전거를 타리란 생각은 없었어요. 자전거를 보는 순간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주인의 허락을 받고 밤새 잠을 설쳤어요. 바람이 얼굴을 부딪치고 지나가요. 길옆 가로수가 손짓하며 잎사귀를 흔들어요. 새벽 6시가 조금 넘었어요. 고요가 나지막이 깔린 이곳에 새소리가 들려와요. 바람결에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와요.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씻어주던 그 유년의 바람이 이곳에도 있었네요. 언덕 내리막길을 달려요. 페달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브레이크를 가끔 잡아야 해요. 돌아오는 길, 언덕을 오를 땐 힘이 들었어요. 호흡이 가빠져와요. 기능이 떨어진 나를 탓하진 않아요.     자전거를 타는 이 짧은 시간에 걸어온 나의 삶을 뒤돌아보아요. 행복했고, 아팠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작은 힘을 보태고, 새 소리를 들으며 평탄 대로를 걷다가도, 내 힘으론 견딜 수 없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해요.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듯 자전거는 움직였고 지울 수 없는 희로애락의 인생길들이 펼쳐졌어요. 시간이 지났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었어요. 어딘가에 깊이 자리 잡은 이야기가 오늘 낯선 장소,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 끄집어낼 수 없던 자전거를 통해 펼쳐지고 있어요. 그래요. 어쩌면 지나간 시간도,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다가올 미래도 찾아가는 사람의 것이 된다는 어쭙잖은 이론이 공식처럼 다가왔어요. 한 달 전까지 상상할 수도 없던 장소에서 그것도 이른 새벽 Wisconsin의 낯선 시골길에서, 빌린 자전거를 탔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이야기들이 유년의 시절 불어 왔던 똑같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자전거 예찬 자전거 예찬 새벽 wisconsin 언덕 내리막길

2024-07-0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주는 선물

나에게 선물을 준다 / 값 비싼 시계도 아니고 / 버켓리스트 여행 티켓도 아니다 / 모두 환호하는 money도 아니다 //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언덕 / 그곳에 피어난 들꽃, 그 이야기 / 서쪽으로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 미시간호수의 출렁이는 파도, 그 소리 / 바람에 눕는 풀들의 춤사위 /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는 하늘, / 구름의 사연을 모은 선물 // 잘 한 것도, 수고한 것도 없는 나에게 / 부끄럽지 말라고 가장 찾기 쉬운 것으로 / 움직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 깨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 두 손 모아 내게 주는 선물 //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 위로 / 쏟아지는 햇살과, 어둠 밝히는 별빛 노래 /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날 빚은 당신 것으로 /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내내 / 당신이 만든 것들을 모아 감히 /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오랜 시간 살다 보니 관심 없던 나에게도 애정이 간다.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다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이 살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냥 잘 적응하며 살아왔다. “No!”라는 반응을 자제하며 살았던 시간 때문에 손해를 볼지언정 손가락질 당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살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삶에 붙들려 살아 가다 보니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이 트고 아침이 오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 되면 갔던 길을 되 돌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봄길 가로수에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노을이 붉게 물드는 언덕을 지나치면서도 노을이 지고 밤이 온다는 사실조차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왔다. 눈물이 메말라 그다지 울고 싶은 날도 없었다.   나를 알아가기에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내 안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사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나 내게 처한 환경이 살아 가는데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요소이려니 생각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진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과연 생각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알려고 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늘 상대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단체와 조직에 대하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조직과 단체의 한 멤버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려고도,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나의 말이나 행동, 생각하는 사고의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과 걸어야 할 길이 되리라는 생각에 의심 없이 동의 하면서도 말이다.    누구도 인생을 단거리 경주에 비유하지 않는다. 인생은 먼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편편한 인생길 만이 아니라 높은 언덕을 오를 때도 있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올 때도 있다. 시원한 그늘을 지날 때도 있지만 뙤약볕에 온몸이 달아올라 숨이 턱밑에 멈출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내가 원하고 바라던 길을 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원치 않는 길을 힘들게 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하고 길의 방향을 다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매일 매일의 삶이 특별한 시간이고 소중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주고 싶다. 그 선물이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선물이 아님을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다. 그 동안 수고했으니 건강을 위해 골프장 멤버쉽 카드를 건네거나, 버켓리스트인 유럽여행 비행기표가 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바닷가 근사한 식당에서 프라임 비프나 랍스터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라. 특별한 행복을 즐긴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나의 모습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그 특별한 선물들을 때마다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시인, 화가)    누구에게 감사의 표시로, 격려와 칭찬의 의미를 담아 주는 것을 선물이라고 한다. 그동안 잘 달려 온, 잘 견디어 온,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지난 해부터 나는 내게 줄 선물을 챙기고 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은 신기하게도 나에게 속한 것들이 아니었다. 나를 지으신 당신에게 속한 것들이었다. 마중물 같은 한 바가지의 물이었다. 호수(Michigan Lake)와 숲(Natural Preserve Park)과 들꽃, 하늘과 구름, 풀을 누이는 바람이었다. 사랑과, 기대와, 꿈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들 이었다. 시들해진 하루는 시간마다 풍경마다 살아나고 있다. 쉼의 진정한 의미는 나의 짐을 내려놓음에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어떤 시간에서든 불편한 나를 풀어 쉼으로, 내려놓음으로 가져갈 선물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주변 가까운 곳에 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선물 시간 때문 유럽여행 비행기표 버켓리스트 여행

2024-06-2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을 만나는 시간

데크의 오른쪽 코너에 둥근 테이블을 놓고 접었던 의자를 폈다. 이곳에 앉으면 한 그루 나무를 대면하게 된다. 이 나무는 아픈 사연이 있는 나무다. 5년 전 눈 폭풍에 쓰러진 전나무에 온몸을 맞았다. 겨울 내내 무거운 무게를 지탱하느라 용을 쓴 탓인지 몸이 뒤틀리고 가지가 엉켜지고 한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다. 빨리 치워주지 못한 내 탓이 크다.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을 초봄에 치우리라 생각했다. 그 사이 나무는 힘겹게 나무의 무게를 버티어냈다. 사람도 사고를 당하면 지체를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오랜 시간 재활 운동을 한다. 5년이란 긴 세월을 나무는 힘들게 다친 가지를 스스로 포기 하기도 하고 간간히 하얗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 아직 살아있어요 손짓하기도 했다. 늦은 봄이면 어김없이 싸라기눈 같은 꽃을 한 아름 안고 뒤란에 진한 향기를 쏟아주었던 라일락이다.     봄이 온 후에도 쓰러진 전나무를 제거해주는데 한 계절을 보냈다. 잔가지를 자르고 전기톱으로 여러 토막으로 몸통을 잘라 땔감으로 쌓아놓다 보니 여름이 왔다. 구부러진 라일락을 다듬어주고 휘어진 가지를 세워 주려다 몇 가지를 생으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추스리는 라일락 옆에서 꽃은 물론 더는 잎사귀를 내밀지 않는 가지를 다듬고 삐쭉 내민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 가지를 자르면 그곳에서 두 개의 가지를 뻗어내기에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가위질을 많이 했다. 그 후로 나는 봄만 되면 나무에 싹이 돋는지를 확인하러 분주히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행여라도 가지 끝에 잎눈이라도 불거지면 그날 하루는 마냥 기뻤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 발을 들이고,   내 손을 내놓고,   내 마음을 열고,   내 머리를 내려놓고,   나를 태우고, 없애고,   나를 소멸 할 때   당신을 만날 수 있어요   당신을 향해 걷고   당신 향해 두 손 모으고   당신을 마음 가득 채우고   당신 앞에 날 데리고 갈 때   가까이 있는 당신께   싹을 내고, 꽃 피울 수 있어요       반으로 작아진 나무에서 올라오는 줄기를 제외하고는 몇 해 꽃이 피지 않았다. 나무의 고통을 우리는 알기나 할까? 나무는 어지간히 힘들어 보였다. 몇 년이 지나도 휘어진 채 다시 곧게 돌아오지 않은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 주었다. 홀로만 삐죽한 가지도 다른 가지와 높이를 맞추어 정리 해주었다. 땅에서 올라오던 나뭇가지도 잘라 주고 나무 안쪽에 싹을 내지 않은 가지들도 모두 제거해 주었다.   나무를 자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무의 크기는 전에 비해 작아졌지만 새로 자라나는 싱싱한 줄기에 잎들이 나날이 자라나고 있다. “잘 자라거라 그리고 내년엔 하얀 꽃망울을 가득 피워다오.” 돌아서는 내게 나무가 흔들리며 내 머리를 만진다. “고마워 내년엔 향을 가득 담은 꽃을 하얗게 피워줄게” 뒤돌아 나는 웃었다. 대답하듯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이제 네 속에서 자라날 꺼야.”   죽은 가지들을 쳐 주듯이 내 몸에도 살아나지 않은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 옹이. 내 몸을 돌아보았다. 쉼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내 몸 구석구석이 휘어져 있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 속 티끌만 눈에 띄어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참 아이러니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멀리 보지 않고 나를 보아도 그렇다.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시간들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내 앞에 있다. 나무의 굽은 가지와 꽃 피우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보였지 내 안의 휘어진 마음과 꽃피우지 못한 꿈들은 보지 못했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내….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시간 재활 나무 주위 나무 안쪽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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