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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입에 넣은 사탕은 달콤했어요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고요   손을 뻗어도 당신은 내 곁에 없어요       소란한 삶이 싫어 이곳에 왔어요   열 번쯤은 떠나왔고 몇 번은 도망쳤어요   멀리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잔가지에 걸린 하늘이 아득히 번져와요   꽃 한 송이 피워 당신께 가려고요       길에서 넘어진 노을을 주웠어요   흥건히 핏빛 되어 하늘에 걸려있어요   가까이 가면 뒷걸음치는 꿈을 꾸어요       우린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어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이어요   서쪽 창가 물들은 고요는 아직 따뜻하고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까지 밀려오고 있어요   하늘로 날아간, 슬픔 안으로 숨어버릴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만 다정해요. 앉아서 바라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서서 보려고 해요. 아침이 밝아 오는 호수 그리고 하늘, 하얀 물새들과 반짝이는 조약돌, 밀려오는 파도가 아름다워요. 이 세상을 떠날 때, 크고 위대한 당신 앞에 설 때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도 가끔 하곤 했어요. 바라보지 못한 풍경, 만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한 사연들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친구들의 이야기들과,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물새들의 대화와, 하얀 거품을 물고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의 사랑과 속삭임이 그리울 때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 바다 끝 어둠을 뚫고 붉은 몸짓이 연기처럼 아니 안개처럼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수평선으로 번져 가는 붉은 하늘은 아주 크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떠 오르고 있어요. 육안으로도 보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수면 위를 차오르고 있어요. 호수가 낳은 신비한 알 같아요.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프락사스의 몸짓 같아요. 이제 그 몸이 미시간 호수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해요.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하루가 떠올랐어요. 신기하기보다 경이로워요. 하루가 떠오르는 동안 고요는 모든 것들의 입을 잠잠히 정지시켜요. 멀리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가 쓸려 왔다 빠져나가요. 호수의 표면에 새의 깃털 같은 윤슬이 반짝거려요.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되고 있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와 하늘이 마땅한 곳에 연분홍의 띠가 수평선 가까이 드리워져요.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기 시작할 때쯤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호수의 수평선 위로 붉은 물감이 퍼지듯 번져 갔어요. 느린 동작같은 풍경 속에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낮이 밤으로 천천히 바꾸어 지고 있어요. 수평선 위에 띠처럼 번져 오던 노을은 벌써 하늘의 반을 덮어 가고 있어요. 그 반대편으로 하얀 보름달이 외롭게, 겸허하리만큼 의연하게 노을을 바라 보고 있어요. 이 풍경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요. 닮고싶은 풍경이에요. 일출과 일몰 사이로 하루라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어요.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노을이 되어 가요. 노을이 지듯 우리의 삶도 저물어 가겠지요. 그러나 낙담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앞에 형형색색의 별이 뜰 거예요. 캄캄한 밤하늘에 등불이 되어주는 별들의 대화가 한창일 거예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당신의 길을 비취겠지요. 베개를 끌어안은 당신에게 잘 자라고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겠지요. 뭇별들이 수를 놓으며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유독 당신의 새벽 창에 끝까지 남아 곤한 잠자리를 지켜줄 별빛 하나 보이겠지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노을 미시간 호수 때쯤 하늘 수평선 위로

2024-08-2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홀로서기

홀로 피었다   바람에 흔들려 구겨진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 못 했지만 현실이었다   구겨진 얼굴 피기가 쉬웠겠는가   흔들리는 갈대가 하얗게 울음을 터뜨렸다   비바람 앞에, 천근의 무게를 지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설 때   정면으로 부딪칠 때 그때 비로소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홀로 핀 당신만 보인다   쏟아 내지 않고 별빛 하나로 모이는   그곳에 서 있어 보면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같은 걸음을 옮길 때   외로움은 멀어졌다   결국 그 힘은 뿌리에 있는 것이다   당신 앞에 날마다 서는 그 힘은   홀로 견디는 그 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라. 홀로 핀 것들이 너만이더냐. 시름시름 꽃대를 세우더니 백일홍도 홀로 피었고, 씨 뿌리지 않은 과꽃도 여린 꽃망울 홀로 맺었고, 망초도 담장 구석에 기대 안개 같은 하얀 꽃으로 홀로 활짝 웃었다. 그뿐이더냐. 수백 광년을 지나 발밑 아래 홀로 부서지는 별빛은 그냥 서서 맞이하기엔 얼마나 눈물겨운가.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은 또 얼마나 포근하고 따사로워 온몸을 녹이지 않던가.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가 홀로 제 몸을 벗었고, 딱새도 홀로 밤낮으로 알을 품더니 올망졸망 제 식구를 데리고 춤추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홀로 견디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어렴풋이 홀로 사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가 홀로 되신 후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홀로 견디고 홀로 사셨다. 그리고 홀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초에 불을 댕기면 심지가 타면서 불꽃이 보인다. 심지가 곧게 깊이 박혀 있으면 불꽃은 오랫동안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나무도 그 뿌리가 깊게 뻗어있지 못하면 비바람, 눈보라에 쓰러지게 된다. 아무리 버티려 해도 제 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홀로 서려면 그 뿌리가 깊어야 한다. 홀로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그 심지에서, 그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무성해도 홀로 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다.     나무가 눈을 뜨는 시간에 나도 눈을 떴다. 나무는 자신이 심어져 자란 곳을 불평하지 않는다. 오늘도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지를 휘며 살아감의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깊은 땅을 향해 뻗어 가고 있겠지. 서 있다는 것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하루를 그냥 맞은 게 아니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두렵고 떨리는 하루를 그림자처럼 지내셨다. 노을마저 져버린 서쪽 창가에 어둠이 찾아오면 지친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을 저몄을 것이다. 잠든 네 자녀의 이마를 쓸어주며 기도 반, 눈물 반으로 지샜을 것이다. 나는 안다. 그 먹먹했을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 고통스런 날들을 견디며 고개 숙이지 않은 것들에겐 향기가 난다. 그래서 난 홀로인 것들이 좋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 홀로 견디어낸 시간이 자랑스럽다. 홀로여서 외롭다고 생각지 마라. 사람도 홀로 있을 때 가장 사랑스럽지 않더냐.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비바람 눈보라 얼굴 피기 시인 화가

2024-08-1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저녁이었어   너의 서 있는 자리, 그리고 노을이었어       깃털의 날림 같은 공기를 밟으며   무심한 듯 가볍게 날아오르고 있어   잎사귀에 구르는 이슬, 긴 가지마다   써 내려간 너의 노래, 그리고 몸짓이었어       서둘러 모아지는 잔가지들의 유희   아쉬움에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     너의 향기는 새벽을 깨우는   이슬이었는데   봄볕같이 스며드는 따뜻한   엄마 손이었는데   안겨 오는 바람처럼   흥겨웠던 날이었는데       돌아오는 차창 안으로 별이 스미는 날   내 힘으로 걷기 힘든 날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에 오랫동안   너의 이름을 부르던 날       오늘이 내일이 될 거야   내일도 오늘이 되어 지나갈 거야   기억이 차오르도록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생생한 기억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돼       높은 갈대숲도,   불어오는 바람도,   굽이치는 강물도,   너의 깊은 숨소리도   먼 길 돌아 스친다 해도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이창봉 교수(Chicago 시 창작 캠프)의 12번째 강의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어제 시작한 듯 느껴지는 문학 캠프가 이제 막바지로 가까이 가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갈증에 단비처럼 다가왔던 시 창작캠프 20명의 열린 마음들이 마음을 열고 강의에 임했기에 곳곳에서 시심이 터지고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주변에 진동하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감추었던 마음의 표출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누구를 위함도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다. 새로운 아침이 깨어나고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따사로움이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구름의 하얗고 푸르른 소망의 창들이 바깥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이 질 때까지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하나가 되었다. 노을을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단단히 잠가 놓은 눈물샘이 터지듯 감성이 터져 나왔다. 신기하고도 새로운 시간들이 어느 사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껍데기를 결코 바꾸지 못하는 카이로스의 시간. 감겨 있던 눈이 떠지고 닫혀 있던 귀가 열리고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동토의 땅이 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거둘 수 없던 마음 밭에 나도 모르는 사이 씨가 뿌려졌고 햇살과 비와 새벽이슬로 싹이 솟고 줄기와 잎사귀를 보이더니 단단한 꽃망울 피워 내기 시작했다. 머지 않은 시간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마다의 꽃들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이제 새것이 되었다.” 성경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시 창자 캠프 동안 웃고 떠들고 서로의 벽돌을 허물어 가면서 시인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시 창작 캠프의 일환으로 1박2일의 문학 기행이 미시간 호수가 펼쳐지는 호변 에어비앤비에서 시작되었다. 간밤에 쏟아졌던 바는 마치 하늘 문이 열리고 퍼부었던 폭우였다. 어두운 호수가 밤새 일렁이고 번뜩이는 섬광 속에도 불구하고 새벽은 오고야 말았다. 모두가 일출을 기대했지만 구름에 가려진 해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일찍 깨어나 해변을 걸었고 간혹 구름을 헤집고 살짝 비친 붉은 하늘에 탄성을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발을 굴렀다. 새벽을 단장 하고 기다리고 있던 호수는 선물처럼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려 주었다. 새벽을 맞는 창문을 말끔히 닦고 찬물에 얼굴을 씻고 유인 반짝이는 눈망울로 새날을 기다릴 일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고 슬픔에 가슴을 조였던 사람에게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애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할 일이다. 소란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호수 가득 내려앉은 고요를 꼭 닮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미시간 호수 창작캠프 20명 창작 캠프

2024-08-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파도 1       파도는 곡선으로 오지만   때로는 직선으로도 온다   직선으로 와서 내 몸을 밀어   모래알처럼 쓸어 내기도 하고   자갈처럼 울음을 터뜨리게도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직선을 이루며 하나가 되었다. 호수에 가득한 파도가 멀리서 밀려오고 있다. 손짓하듯 잔잔한 거품을 물고 해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눈길을 고정하고 파도의 이동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파도의 물결이 생겨나고 어느 사이 서 있는 발밑까지 적시며 세차게 밀려오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 앞에 서면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높은 나무 위에 여러 마리의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며 하루를 즐거이 맞이하고 있다. 멀리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어디에서 오는지 여러 마리의 새 떼가 함께 모여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지난밤 거칠게 퍼부었던 비와 간간이 번뜩였던 섬광과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파도와 함께 시간의 조각들이 흩어진다. 그 조각들은 윤슬이 되어 호수의 표면에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고 있다.   도대체 이 호수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누가 이처럼 충만한 물결을 물려 오게 했을까? 지난밤 퍼붓던 빗물이 호수의 수위를 높인 탓인지 거세게 모래가 밀려오고, 또 쓸어내리고 있다. 굵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파도의 울음소리같이 들린다. 만물이 주로부터 지어져 다시 지은이에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수천수만 년 전 아니 이 땅이 지어지고 이 우주가 지어질 때 까마득한 창세로부터 밀려오고 밀려갔던 파도가 오늘 이렇게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한 것, 연약한 것만을 바라보며 실망하고 좌절했던 우리의 모습.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 아닌가. 파도를 보라. 그의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을 보라. 밀려오는 당당한 그의 허리를 보라. 눈을 들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든 풍경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어제가 아니고 오늘이다. 우리의 삶에서 끝이라는 개념은 지워져야 한다. 지금까지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서 꼭 마지막 날이 될 것만 같은 어둠의 밤이 지났다. 아직 남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동이 트고 있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직선의 화살을 쏘아 내리고 있다. 어둠을 뚫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어둡던 마음에 문이 열리고 다시 먼동이 트고 새날이 밝아 오고 있다. 지난밤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조금의 빈틈도 없이 시계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듯 호수는 제 자리를 찾았다. 새날이 밝아 오면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호수,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모래의 쓸림도, 자갈의 울음도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호수의 사랑은 오늘도 아름답고 또 새롭다. 윤슬이 보석 같이 빛나고 하얀 거품에 물방울이 생명으로 가득 찰 때 내 속 가득 차오르는 감격의 선물을 어찌 감당해 낼까?       파도 2       눈을 피해 살며시 다가오는   너의 손끝을 보고야 말았다   너는 나에게 잊힐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로 가서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이 되고싶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미시간 호수 섬광과 하늘 밀어 모래알

2024-08-0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고향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아서, 스며드는 솜사탕 같아서, 언젠가 마주했던 싱그런 파란 바람 한 점 같아서,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 닦아 주는 엄마 눈물 같아서, 누군가에게 달려가 전해 주고픈 반가운 편지 같아서, 깨어 보니 멀리서부터 온 굽은 인생길 같아서, 길 따라 소담히 핀 들꽃 같아서, 무심히 걸었던 가로수길 느티나무 그늘 같아서, 붉게 피었다 이내 자취를 감춰버리는 서글픈 서쪽 노을 같아서, 하늘 멀리 달아나는 연 꼬리 따라 마냥 뛰었던 숨 가쁜 오솔길 같아서, 싸리비로 쓱쓱 쓸어낸 말끔한 안마당 같아서, 숲길 오르다 잠자리 날갯짓에 걸음을 멈춘 까까머리 친구 뒷모습 같아서, 뿌리치지 못한 애정한 손잡음 같아서,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 같아서, 그렇게 또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저미고, 그래서 또 다지고, 어느 사이 가슴을 열게 하는, 바람 불어오는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엄마 누운 한 평 남짓 로즈힐 세미토리, 먹먹한 그리움으로 유년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소식 끊긴 친구 얼굴 흐르는 구름에 밀려가는, 노랑 보라 잔잔한 들꽃들이 반갑게 손짓하는, 노랑나비, 흰나비 한 쌍 날개 겹치며 뒤뚱뒤뚱 언덕 넘어 사라지는, 그 숲길에서 나를 잃고 너를 잃어버리게 되는, 노을 그 깊은 회한의 물감이 별빛에 풀어지는, 싸리문 열면 정갈한 장독대 그 옆 기슭에 앉아 편지를 읽는, 그림 하같은 풍경을 집안에 가득 들여놓고 잠들지 못하는, 그렇게 또 그래서       물병에 들꽃   한나절 햇살은 지고   싸리문 열고 들어온 노을과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       나에게 흐르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고요를 모두 내어 드리이다   가슴을 풀으려니   그 자리에   한 송이 꽃으로 오시오       나에게 오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 하리다   두 팔을 뻗으리니   그대 떨리는 별자리로   파랗게 손짓해 주시오      나에게 별이 뜨고   소리 없이 밤이 오고 있소   내 그대를 향해   숲이 되어 흐르리니   내 눈 가득   그대 어디라도 오시오   그렇게 또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단의 끝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작은 실개천이 강물로 이르고, 강이 바다 향해 흘러가듯 계단 끝에는 이상의 존재 고향이라는 아득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날마다 고향을 향해 한 계단만큼 가까이 가고, 호수에 풀어놓은 달빛은 헤어진 기억을 어루만져 올이 풀린 고향의 등을 도닥거리고, 훤히 드러난 시간을 견고한 위로의 손으로 도닥여 준다 고향이라는 위로는 풍랑 이는 바다 한가운데 높은 파도에 깊은 심지의 뿌리를 내리고 다시 살아나고,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닮지 않았다 봄이 겨울을 닮지 않았듯이 생소한 너의 얼굴에 하얀 포말의 바다가 보이고, 가보지 못한 외로운 섬이 보이고, 싸리문의 작은 집이 그리움으로 보인다 저만치에서 고향이 손짓하고, 나를 부르고, 겨울나무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그려보고, 그렇게 또 그래서       눈이 떠지고   귀가 뜨이는 거야   터지고 트여   보지 못한 것이 보이고   듣지 못한 것이 들리는 거야   그렇게 또 그래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들꽃 한나절 친구 얼굴 노랑나비 흰나비

2024-07-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 피우는 당신

꽃 피우는 당신       그대 독백 나를 저밉니다   나의 등 뒤로 안겨 와   땅거미 밀리는 아픔입니다       그대 몸짓 날 일으킵니다   너무 멀리 흔들리는 불꽃   심지로 타는 눈물입니다       밤 지나 햇볕과 바람   살 햇볕과 무심한 바람   기억을 주우러 간   밤과 아침 사이   푸른빛 하늘을 그리고서야   부서진 마음에 닻을 내리는   아픔이란 이름으로 자꾸   꽃피우는 당신입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시카고 문학 캠프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오신 이창봉 교수를 환영하러 오헤어 공항에 나갔다가 함께 차로 돌아와 보니 왼쪽 앞바퀴에 부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함께 나갔던 박 회장, Jay님에게도 미안했지만, 시카고에 도착한 첫날 짐도 풀기 전에 차가 움직일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을 목도한 이 교수에게도 미안했습니다. “Uber를 불러 먼저 이동하면 좋겠어.”라는 나의 말은 귓전에 두고 “아니야,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자.” “같이 가자.” 팔을 잡아주는 동행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Office가 다행히 공항 롱텀 파킹랏 근처에 있었습니다. 물어 물어 공항 기차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그곳에서 롱텀 Parking lot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Office에 도착했습니다. 수년 전 내지 않았던 티켓이 몇 장 있었고 거기에 부츠값 100불을 포함한 돈을 지불하고 다시 차가 있는 Parking lot으로 돌아와 보니 부츠는 그사이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이 교수가 도착한 시카고에서의 첫날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참 즐거웠습니다. 오헤어 공항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껄껄거리며 여기저기 물어가며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단 40분 만이었습니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이었지만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히려 기뻤습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세상살이, 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한 걸음 물러나 차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문제는 쉽게 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에 살아온 지 오래지만 흔치 않은 일 이었고 손님을 맞는 오헤어 공항이라는 특별한 장소여서 더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움직이겠다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은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꽃으로 피어나 모두의 마음에 웃음을 안겨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은 좋은 환경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무거운 것과 나를 조이는 굴레를 벗어 놓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힘겹게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사실 고민하고 힘들어한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나고, 부딪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때 중요한 키 포인트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은 생각 그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손을 내밀어 표현해야 하고 가슴을 열어 안아주어야 합니다. 험한 길을 함께 걸어 주고, 비와 눈길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이겨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살아가야 할 날이 살아왔던 날보다 짧은 사람들에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은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에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 환경이 어렵다고 나아진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면 결코 그 사랑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나는 감사한 일을 겪으며 몇 가지 사실을 나 자신에게 당부했습니다.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살 것. 무거운 겉옷을 벗고 가벼워질 것. 행복한 뒷모습으로 하루를 마감할 것. 작은 몸짓, 작은 생명들에게 눈맞춤 할 것.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환경과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 이 모든 것들이 남은 날의 숙제임을 기억할 것.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오헤어 공항 시카고 문학 공항 기차

2024-07-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직 꿈이야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설명이 되지 않는 어떤 날은 깊은 물에 잠기고 말아 / 힘껏 뛰어도 멀리 갈 수 없는 / 발이 땅에 붙어버린 꿈을 꾸기도 해 / 꿈을 꾸며 나에게 말했어 아침이 보고 싶다고 / 빨리 말하고, 천천히 걷고 싶은 오솔길은 멀지 않은데 / 새가 노래하는 아침은 더디 오고 있어 / 두 발자국 걸으면 한 발자국 뒤돌아보는 밤 / 발이 땅에 붙어 걸을 수가 없었어 / 텔레파시를 네게 전송하는 아직 밤이야 // 꿈속에 떠다니던 단어가 맞춰지고 있었어 / 먼동이 오고 있었으니 / 큰 물결, 작은 파장, 수평선 붉은 해 / 거대한 호수의 가슴에서 빠져 나오고 있어 /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의 날갯짓처럼 / 새벽을 기다렸던 물새가 날고, 나는 입을 꼭 다물고 / 천국의 문을 통과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 왔던 길을 되돌아 가슴보다 큰 태양을 안아주었지 / 차갑기도, 뜨겁기도 한 태양이 부딪히며 안겨 오는데 /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잃어버린 단어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아직 꿈이야 / 날마다 내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인다. 곧게 뻗은 길도 보이지만 구불구불 어지러운 길도 보인다. 늘 평탄한 길을 걷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위로에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나는 오늘 어떤 내가 되어가는가?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라. 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체로키족의 구전이다. 과연 내가 나를 알까? 안다면 얼마나 알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밀한 존재인가? 측은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위에 서 있다. 언덕 아래로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풀숲 같기도 한 나무들이 희끗희끗 보이는 지붕 사이에 끼여 서 있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꼬랑지를 맞대어 지나가고, 그 옆 인도에는 신기하게도 개미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져 있다. 그 무리 중 혹 한 사람이 멀리 언덕 위에서 어떤 사람이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의 다른 위치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공유몽’이란 단어가 있다.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오래 소식이 없던 친구를 생각했는데 그 친구에게 불현듯 소식이 오거나, 어떤 사람과 우연히 여러 번 마주치게 되어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을 통해 가장 필요했던 정보를 얻게 되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이처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의미 있는 일치를 종종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원리와는 다른 시간과 의미로 연결된 무 인과적인 원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꿈 속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꿈 속에서 텔레파시를 경험하는 것은 가족, 친척, 친구, 애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흔히 보고되는 현상이다. 깊은 감정과 정서의 교류가 있을 때 텔레파시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꿈을 연구한 학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나 재해로 헤어진 부모와 자식 간, 연인들이나, 비슷한 종류의 깊은 공포나 열정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꿈에 텔레파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깨어 있을 때 이성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꿈에 텔레파시는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의식에서 배제하고, 현실에서 금기로 여기고 무시한 것들이 무의식에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현대인의 꿈에 텔레파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반복되는 꿈이 의식이 일상에서 알아야 할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된다. 꿈을 꾸면서 내가 꿈속에 있다는 걸 의식한다면 꿈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꿈을 깨는 순간 사라지게 되지만 그 상황은 어떤 모양으로든 의식의 깊은 창고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떼어낼 수 없다. 불현듯 장자의 호접지몽(나비의 꿈)이 생각나는 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꿈속에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메리칸 인디언 파장 수평선 언덕 아래

2024-07-1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담장이 앞에서

    담장이 앞에서     기대어 얼굴을 부빈다   따뜻한 손을 펼치며 마음을 다지며 키를 키우고 햇살 향해 하늘을 오른다 가로막히면 피해 가고,   떨어지면 매달려   바람에 살랑이며 춤춘다     인생 좌우명 같은 삶   겨우내 숨을 고르고   어느 봄날 기지개를 켜고 여름내 거침없이 자라고 있다 가파른 담벼락, 고목을 오르며 반짝이는 초록 얼굴을 뽐낸다     그대 앞에서 배운다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또 얼마나 진지했는지 그대 손바닥 같은 잎사귀로 덮어주고 포옹해 줬는지 힘들고 캄캄한 삶의 회한 흐르는 눈물 닦아주었는지     그대 앞에서 다짐한다 감추고, 가리지 않겠노라고 모자이크 같은 한 조각 인생 푸르게 채워 가겠노라고 치열한 삶 저 담장 너머로 힘차게 뻗어 가겠노라고     찬 바람 불고, 흰 눈 내려 그대가 잎사귀를 움츠리고 더 단단히 담장을 붙잡을 때 나도 인생의 추운 고비마다 흰 눈을 꽃잎처럼 맞으며 꽃 피울 봄날을 맞을 거라고     굳어진 열 개의 손가락, 앞을 가로막는 높은 담장 깊은 숨으로 푸르게 채워   하늘 향해 꽃 피울 거라고 그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늘이 흐리고 구름이 모여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비 내리는 오후, 나무도 풀도 꽃들도 비를 맞고 있다. 나무 둥지를 타고 오르는 담장이가 보인다. 담장이 잎사귀가 빗물에 반짝인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린다. 북쪽으로 향한 창문과 18세기 풍의 지붕과 네덜란드풍의 다락방과 방세가 싼 집을 찾아 헤매 다녔다. 나지막한 삼층 벽돌집 꼭대기에 수와 존시는 화실을 차렸다. 예술에 있어서 치커리 샐러드나 예복 소매의 취향에서 서로의 기호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희망에 부풀었던 존시에게 폐렴이라는 병마가 덮쳐 왔다. 존시는 페인트칠한 철제 침대에 꼼짝 못 하고 누워 네덜란드풍의 조그마한 창으로 이웃 벽돌집의 텅 빈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뿌리가 썩은 해묵은 담장이 덩굴이 벽돌담 중간쯤까지 뻗어 올라와 있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담쟁이 잎은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이 허물어져 가는 벽돌담에 매달려 있었다.   “조금씩 빨리 떨어지고 있어. 남아 있는 잎을 세고 있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이젠 쉬워. 또 하나 떨어지네.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잎뿐이야” “어, 또 한 입 떨어지네. 어두워지기 전에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러면 나도 죽는 거야.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저 가엽고 지쳐버린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리고 싶어”     맨 아래층에 베어먼이란 화가가 살고 있었다. 베어먼은 예술에서 낙오자였다. 40년 동안이나 붓을 쥐고 살아왔지만 예술의 여신 치맛자락도 잡아 보지 못했다. 수는 베어먼에게 존시의 터무니없는 망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약해진다면 존시는 가냘픈 나뭇잎처럼 둥둥 떠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존시는 잠들어 있었다. 창밖에는 싸늘한 진눈깨비가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존시는 흐릿한 눈으로 내려져 있는 녹색 커튼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었다. “보고 싶으니까 올려 줘.”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담벼락에는 아직도 담장이 잎 하나가 뚜렷이 붙어 있지 않은가? “마지막 잎새야.” 그 후로부터 존시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날 오후 수가 침대로 다가가 보니 존시는 누운 채 쓸모 없던 파란 빛깔의 털실로 숄을 짜고 있었다. 존시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수는 존시를 껴안았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셨대. 겨우 이틀을 앓고 말이야.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가 왔고 초록색과 노란색 그림물감을 푼 팔레트와, 붓 몇 자루가 흩어져 있었다는 거야. 존시! 저 담벼락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 좀 봐 바람이 부는 데도 흔들리지 않아. 존시! 저건 바로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야.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날 밤에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 놓으셨던 거야.   이렇게 〈마지막 잎새〉의 단편은 끝이 났다. 고귀한 생명은 이렇듯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하고, 이렇게 숭고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담장이 담장이 잎사귀 담장이 덩굴 베어먼 할아버지

2024-07-0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자전거 예찬

무릎이 까이며 자전거를 탔던 시절이 있었지요. 넘어져도 아픈 줄 모르고 히죽히죽 웃고, 일어났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나비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강둑에 핀 데이지에 정신이 팔려 노을이 지는 줄도 몰랐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르고 마냥 페달을 밟으면 새로운 풍경이 시야에 나타나고 또 사라지곤 했지요. 바람이 얼굴을 만지며 지나가면 송송 맺혔던 땀방울이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엄마가 부르는 소리는 아득해서 달빛이 가로등보다 환해질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지요. 잔잔한 시내도 가뿐히 건너고 황량한 들판도 나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신세계였어요. 꿈속에서도 별이 총총 떠다니는 하늘을 이곳 저곳 찾아다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 꺼진 우리 집이 까마득히 보였어요.   집 앞 공원에서 한 청년이 아이들과 놀고 있어요. 햇볕이 좋은 봄날이었을 거에요. 열심히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다 흔들리는 자전거를 살짝 잡아 주기도 해요. 복사꽃이 눈처럼 날리는 공원길을 흔들흔들 위태롭게 자전거 두 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아오곤 해요. 나는 알고 있어요. 높은 키의 전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저 돌아가는 길에서 넘어졌을지도 몰라요. 노란 달맞이꽃을 바라보다 넘어질 뻔했을 거에요. “자전거 뒤를 잡고 있으니 걱정 말고 페달을 밟아. 넘어질 리 없어.” “아빠 잡고 있지요? 꼭 잡아야 해요.” 잡았던 내 손이 떨어지고 자전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어요. 힐끗 돌아보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와 함께 번지던 자신감이 햇살과 함께 따뜻하게 밀려왔어요.       바람이 오는 길   세월이 가는 결 하늘이 열리고 내려앉은 밤 별 어둠은 깊어서 스치는데 풀, 나무, 숲도 한 호흡   바람에 소리 없이 깊어지고   안개처럼 뿌려지는 고요      초록을 따라가는 길 얼굴을 말끔히 씻고 새벽으로 오는 이슬 같은 노오란 달맞이꽃 피어나는 앳된 봉오리 걸음을 멈춘 생각     밤새 뒤척이던 나뭇잎 사이 먼동으로 깨어나는 하늘     흔들리며 오는 그대는     낯선 길에 있어요. Chicago에서 멀리 떨어진 Wisconsin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어요. 이 나이에 자전거를 타리란 생각은 없었어요. 자전거를 보는 순간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주인의 허락을 받고 밤새 잠을 설쳤어요. 바람이 얼굴을 부딪치고 지나가요. 길옆 가로수가 손짓하며 잎사귀를 흔들어요. 새벽 6시가 조금 넘었어요. 고요가 나지막이 깔린 이곳에 새소리가 들려와요. 바람결에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와요.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씻어주던 그 유년의 바람이 이곳에도 있었네요. 언덕 내리막길을 달려요. 페달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브레이크를 가끔 잡아야 해요. 돌아오는 길, 언덕을 오를 땐 힘이 들었어요. 호흡이 가빠져와요. 기능이 떨어진 나를 탓하진 않아요.     자전거를 타는 이 짧은 시간에 걸어온 나의 삶을 뒤돌아보아요. 행복했고, 아팠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작은 힘을 보태고, 새 소리를 들으며 평탄 대로를 걷다가도, 내 힘으론 견딜 수 없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해요.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듯 자전거는 움직였고 지울 수 없는 희로애락의 인생길들이 펼쳐졌어요. 시간이 지났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었어요. 어딘가에 깊이 자리 잡은 이야기가 오늘 낯선 장소,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 끄집어낼 수 없던 자전거를 통해 펼쳐지고 있어요. 그래요. 어쩌면 지나간 시간도,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다가올 미래도 찾아가는 사람의 것이 된다는 어쭙잖은 이론이 공식처럼 다가왔어요. 한 달 전까지 상상할 수도 없던 장소에서 그것도 이른 새벽 Wisconsin의 낯선 시골길에서, 빌린 자전거를 탔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이야기들이 유년의 시절 불어 왔던 똑같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자전거 예찬 자전거 예찬 새벽 wisconsin 언덕 내리막길

2024-07-0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주는 선물

나에게 선물을 준다 / 값 비싼 시계도 아니고 / 버켓리스트 여행 티켓도 아니다 / 모두 환호하는 money도 아니다 //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언덕 / 그곳에 피어난 들꽃, 그 이야기 / 서쪽으로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 미시간호수의 출렁이는 파도, 그 소리 / 바람에 눕는 풀들의 춤사위 /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는 하늘, / 구름의 사연을 모은 선물 // 잘 한 것도, 수고한 것도 없는 나에게 / 부끄럽지 말라고 가장 찾기 쉬운 것으로 / 움직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 깨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 두 손 모아 내게 주는 선물 //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 위로 / 쏟아지는 햇살과, 어둠 밝히는 별빛 노래 /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날 빚은 당신 것으로 /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내내 / 당신이 만든 것들을 모아 감히 /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오랜 시간 살다 보니 관심 없던 나에게도 애정이 간다.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다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이 살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냥 잘 적응하며 살아왔다. “No!”라는 반응을 자제하며 살았던 시간 때문에 손해를 볼지언정 손가락질 당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살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삶에 붙들려 살아 가다 보니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이 트고 아침이 오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 되면 갔던 길을 되 돌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봄길 가로수에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노을이 붉게 물드는 언덕을 지나치면서도 노을이 지고 밤이 온다는 사실조차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왔다. 눈물이 메말라 그다지 울고 싶은 날도 없었다.   나를 알아가기에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내 안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사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나 내게 처한 환경이 살아 가는데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요소이려니 생각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진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과연 생각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알려고 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늘 상대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단체와 조직에 대하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조직과 단체의 한 멤버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려고도,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나의 말이나 행동, 생각하는 사고의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과 걸어야 할 길이 되리라는 생각에 의심 없이 동의 하면서도 말이다.    누구도 인생을 단거리 경주에 비유하지 않는다. 인생은 먼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편편한 인생길 만이 아니라 높은 언덕을 오를 때도 있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올 때도 있다. 시원한 그늘을 지날 때도 있지만 뙤약볕에 온몸이 달아올라 숨이 턱밑에 멈출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내가 원하고 바라던 길을 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원치 않는 길을 힘들게 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하고 길의 방향을 다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매일 매일의 삶이 특별한 시간이고 소중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주고 싶다. 그 선물이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선물이 아님을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다. 그 동안 수고했으니 건강을 위해 골프장 멤버쉽 카드를 건네거나, 버켓리스트인 유럽여행 비행기표가 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바닷가 근사한 식당에서 프라임 비프나 랍스터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라. 특별한 행복을 즐긴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나의 모습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그 특별한 선물들을 때마다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시인, 화가)    누구에게 감사의 표시로, 격려와 칭찬의 의미를 담아 주는 것을 선물이라고 한다. 그동안 잘 달려 온, 잘 견디어 온,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지난 해부터 나는 내게 줄 선물을 챙기고 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은 신기하게도 나에게 속한 것들이 아니었다. 나를 지으신 당신에게 속한 것들이었다. 마중물 같은 한 바가지의 물이었다. 호수(Michigan Lake)와 숲(Natural Preserve Park)과 들꽃, 하늘과 구름, 풀을 누이는 바람이었다. 사랑과, 기대와, 꿈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들 이었다. 시들해진 하루는 시간마다 풍경마다 살아나고 있다. 쉼의 진정한 의미는 나의 짐을 내려놓음에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어떤 시간에서든 불편한 나를 풀어 쉼으로, 내려놓음으로 가져갈 선물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주변 가까운 곳에 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선물 시간 때문 유럽여행 비행기표 버켓리스트 여행

2024-06-2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을 만나는 시간

데크의 오른쪽 코너에 둥근 테이블을 놓고 접었던 의자를 폈다. 이곳에 앉으면 한 그루 나무를 대면하게 된다. 이 나무는 아픈 사연이 있는 나무다. 5년 전 눈 폭풍에 쓰러진 전나무에 온몸을 맞았다. 겨울 내내 무거운 무게를 지탱하느라 용을 쓴 탓인지 몸이 뒤틀리고 가지가 엉켜지고 한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다. 빨리 치워주지 못한 내 탓이 크다.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을 초봄에 치우리라 생각했다. 그 사이 나무는 힘겹게 나무의 무게를 버티어냈다. 사람도 사고를 당하면 지체를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오랜 시간 재활 운동을 한다. 5년이란 긴 세월을 나무는 힘들게 다친 가지를 스스로 포기 하기도 하고 간간히 하얗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 아직 살아있어요 손짓하기도 했다. 늦은 봄이면 어김없이 싸라기눈 같은 꽃을 한 아름 안고 뒤란에 진한 향기를 쏟아주었던 라일락이다.     봄이 온 후에도 쓰러진 전나무를 제거해주는데 한 계절을 보냈다. 잔가지를 자르고 전기톱으로 여러 토막으로 몸통을 잘라 땔감으로 쌓아놓다 보니 여름이 왔다. 구부러진 라일락을 다듬어주고 휘어진 가지를 세워 주려다 몇 가지를 생으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추스리는 라일락 옆에서 꽃은 물론 더는 잎사귀를 내밀지 않는 가지를 다듬고 삐쭉 내민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 가지를 자르면 그곳에서 두 개의 가지를 뻗어내기에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가위질을 많이 했다. 그 후로 나는 봄만 되면 나무에 싹이 돋는지를 확인하러 분주히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행여라도 가지 끝에 잎눈이라도 불거지면 그날 하루는 마냥 기뻤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 발을 들이고,   내 손을 내놓고,   내 마음을 열고,   내 머리를 내려놓고,   나를 태우고, 없애고,   나를 소멸 할 때   당신을 만날 수 있어요   당신을 향해 걷고   당신 향해 두 손 모으고   당신을 마음 가득 채우고   당신 앞에 날 데리고 갈 때   가까이 있는 당신께   싹을 내고, 꽃 피울 수 있어요       반으로 작아진 나무에서 올라오는 줄기를 제외하고는 몇 해 꽃이 피지 않았다. 나무의 고통을 우리는 알기나 할까? 나무는 어지간히 힘들어 보였다. 몇 년이 지나도 휘어진 채 다시 곧게 돌아오지 않은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 주었다. 홀로만 삐죽한 가지도 다른 가지와 높이를 맞추어 정리 해주었다. 땅에서 올라오던 나뭇가지도 잘라 주고 나무 안쪽에 싹을 내지 않은 가지들도 모두 제거해 주었다.   나무를 자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무의 크기는 전에 비해 작아졌지만 새로 자라나는 싱싱한 줄기에 잎들이 나날이 자라나고 있다. “잘 자라거라 그리고 내년엔 하얀 꽃망울을 가득 피워다오.” 돌아서는 내게 나무가 흔들리며 내 머리를 만진다. “고마워 내년엔 향을 가득 담은 꽃을 하얗게 피워줄게” 뒤돌아 나는 웃었다. 대답하듯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이제 네 속에서 자라날 꺼야.”   죽은 가지들을 쳐 주듯이 내 몸에도 살아나지 않은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 옹이. 내 몸을 돌아보았다. 쉼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내 몸 구석구석이 휘어져 있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 속 티끌만 눈에 띄어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참 아이러니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멀리 보지 않고 나를 보아도 그렇다.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시간들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내 앞에 있다. 나무의 굽은 가지와 꽃 피우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보였지 내 안의 휘어진 마음과 꽃피우지 못한 꿈들은 보지 못했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내….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시간 재활 나무 주위 나무 안쪽

2024-06-1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로 가는 길

호수로 가는 길     호수로 가려면 / 남기는 기대일랑 져버려야 하지 / 무거움 버리고 가벼워질 때 / 흔들리는 모든 건 순리가 되지 / 조건이 많을수록 바람 드세고 / 드센 바람 맞을수록 걸음은 무뎌질 테니 / 손 베일 칼을 쥐어선 안되겠지 / 무턱대고 다가섰단 통째 / 그를 잃게 되기도 하지 / 떠나보내기도 하겠지 // 호수로 가려면 / 속삭이는 사랑이 되어야 하지 / 관계가 힘들 땐 사랑을 택하고 /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 서로의 등이 짐이 된다면 / 소리 없는 균열이 시작 되겠지만 / 그에게 다가서는 길을 걸어야 하지 / 마음의 거리는 무관심과 비례하니 / 거리를 좁히고 얼굴 앞까지 가서 / 그의 숨소리로 숨을 쉬고, 잠 들고 / 그의 눈에 내 눈을 포개야 하지 // 사랑을 하려면 / 손 내밀어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 혹여 뿌리치는 그 물결 감싸 쥐어야지 / 냉랭했든 관계에 물꼬가 트이고 / 거리를 좁혀 한나절 흐르다 보면 어느새 / 우리 사이 어우르는 물길이 되고 / 끊이지 않는 물소리 노래가 되리 // 등과 등 사이 깊은 골은 사라지고 / 서로를 바라보다 사랑에 빠지게 되지 / 물길도 깊고 내 마음도 깊어 마침내 / 마음의 거리는 한 길 되지 / 언제라도 달려가면 넓은 가슴 / 속삭이는 사랑이 되지 //     호수로 향하는 길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마음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새 호수가 보이는 비밀의 정원을 걷게 된다. 호수로 가는 길은 고요하고 적막한 들 길이다. 누가 가꾸지도 않은 좁고 아득한 길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내 안에 가득 채워지는 행복의 시간들. 호수에 가는 내내 기특하고 신기한 들꽃들을 만나게 된다. 노랗고 보랏빛이 나는 들꽃과, 하얗고 별 모양을 한 작은 꽃들을 보면서 세상을 지으시고 참 좋았더라 하셨던 조물주의 마음이 전해 온다. 조금 후 펼쳐질 호수의 풍경만큼이나 가슴 벅찬 풍경이다.   겨울 내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황량한 빈 들에 꽃들이 피어나고 바람에 쏠리는 들풀들의 유희는 누구도 연출할 수 없는 장관이다. 하늘이 너무 파래 구름이 흐르는 모습이 꼭 푸른 물 위를 흐르는 작은 돛단배 같이 보인다. 들풀이 한쪽으로 밀리는 걸 보니 호수가 가까이에 있다는 징후다. 휘어진 길 끝엔 자그마한 모래 언덕이 있고, 이제 몇 그루의 나무를 지나면 푸른 호수 그 잔잔한 물결 앞에 소개된다. 호수가 내게 달려온다. 나는 두 팔을 벌려 호수를 안는다.     왜 자주 찾아오지 못했을까? 이곳에 올 때마다 호수처럼 마음이 파랗게 물든다. 이 느낌이 너무 좋아 겨울에도 눈길을 헤치며 호수와 마주했었다. 자세히 보면 호수는 늘 푸르지 않다. 어떤 날은 짙은 프러시안 블루였다가 코발트의 청량한 블루가 되기도 한다. 한 날은 어디가 호수의 끝인지 어디가 하늘의 시작인지 모르게 호수와 하늘은 한색이 되기도 한다. 호수는 하늘 위에서 구름을 그리고, 하늘은 호수 아래 물결과 놀기도 한다. 호수도 인생처럼 늘 잔잔하고 평화스럽지만은 않다. 바람이 몹시 심하고 추운 날 점퍼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호수를 찾은 적이 있었다. 눈길에 푹푹 빠지며 호수 앞에 섰는데 호수는 화가 나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의 폭이 내 키를 넘는 듯했다. 온통 회색빛의 호수와, 호수를 누르고 있는 하늘과, 나를 날려 보낼 것 같은 살을 에이는 찬 바람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몸을 움추리고 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호수는 만날 때마다 무언의 말을 남겨 주었다. 삶은 그런 거라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펑펑 울고, 사랑하려면 뜨겁게 사랑하라고. 결코 물러서지 말라고, 한 걸음도 뒤로 주춤하지 말라고….   이곳에 오면 많은 일들이 생각나기도 지워지기도 한다. 꾸밈없는 이 호수가 좋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호수가 믿음직하다, 지난겨울도 올 봄도 오늘도 변함없는 호수의 손짓은 그리운 이의 손짓만 같다.   떠내려온 나무 등걸에 앉아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물결을 바라 보다 보면 삶은 어느덧 밀려 오고 빠져 나가는 호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깨우쳐지는, 세상 소리는 사라지고 물결이 밀려 오고 부서지고 또 빠져나가는 동안 선명하게 남겨지는 파도 소리며, 그 적막함이며, 모래알 구르는 소리만 가득하다. 오른쪽 해변으로부터 멀리 왼쪽 해변까지 걸으며 남겨진 외로움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더 살아가게 될지. 우리 앞에 펼쳐질 희로애락의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 느리게 살아 가고 싶다. 젊은 날 시카고에 와 이제 불혹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걸음을 아껴야겠다. 두 걸음을 한 걸음으로 줄이며 살아야겠다. 아침이 깨어나는 시간을 느끼며 아침의 고요를 셈하며 살아야겠다. 호수의 깊은 푸르름이 나의 남은 삶의 푸르름으로 이어진다면 호수로 가는 길은 이때껏 걸어왔던 길 중 나의 최애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 호수도 인생 내일인 호수 호수 아래

2024-06-1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인연   시간이   저만치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종착역을 향해   걷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무게의 추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가슴에 담아보려다 빈 손짓만 했다     아직 피지 않은   작약의 꽃봉오리에 반해 반나절을 뜰에서 놀았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모나지 않게, 찌르지 않게     파도는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가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다는 그렇게 부서지는데     설레는 물결 숨 가쁜 기대로   온종일 뜬눈이다 이슬과 함께 머리 들 당신이 보인다       가벼워지려고 나비를 따라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자리. 그 자리에 바로 네가 있었다. 작은 꽃을 좋아하는 너는 꽃을 다듬는 내내 자리를 지켜주었다. 쇠파리에 물려도 꼼짝없이 버티고 서있던 덕분에, 나비야 나비야를 불러준 덕분에 야생화를 채집 할 수 있었다. 후에 그가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아프고 간지러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려운 자리엔 항상 네가 이야기처럼 서 있었다. 야생화를 뒤란에 심으면서 고마운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내년 이맘 때 보라, 분홍의 꽃들이 싱그러운 날. 그 때 일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빨갛게 부어 오른 그 상처를 호호 불어 줄 수 있으려나?   Memorial Day 전후에는 늘 꽃을 심고 다듬어준다. 매년 피어나는 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천방지축 난장판이 된다. 다듬어주고 너무 많이 번진 부분은 뽑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꽃들과 뒤엉켜 볼 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노랑은 노랑대로, 보라는 보라대로, 분홍, 하얀꽃은 그들대로 뭉쳐 있을 때 더 정리가 되어 보인다.     처음 정원을 가꿀 때는 높낮이를 계산하지 않고 심다 보니 다음 해 자리를 바꿔주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낮은 것은 앞쪽에 높은 것은 뒷쪽에 심어야 한다. 바람과 비에 쓰러지기 쉬운 꽃들은 받침대를 세워주고 꽃망울이 너무 많이 맺은 작약은 한 대궁에 두 세 개만 남겨두고 잘라 주어야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뻗어나간 가지들을 그대로 두면 이듬해면 나무의 형태가 엉망이 된다. 그때마다 잘라 주어야 한다. 잎사귀가 유난히 많이 자란 가지도 다듬어주고 나무 밑둥에서 뻗어나온 가지는 미련 없이 제거해야 나무가 곧게 자라게 된다.     정원을 가꾸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꽃들과도 인연이 없으면 서로의 정원에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애지중지 키워도 다음해 봄 싹을 내지 않는 꽃들도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는 시름시름 해도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 심으면 다음해 무섭게 꽃대를 들고 일어나는 것들도 있었다. 그것을 나는 꽃과의 인연이라고 말하겠다.     사람들 과의 인연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끝까지 갈 것만 같았던 친구도 어느 날 서로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우연히 만났어도 그 인연이 오래 깊이 유지되기도 하는 것을 살면서 느끼고 있다. 인연은 서로의 눈에 띄는 것이다. 인연은 서로의 마음에 오래 남아 서로의 풍경과 일상에 어우러지는 것이다. 부족하거나 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서로에게 채워지는 것이다.     이른 봄 눈 속을 헤집고 피는 꽃들도 있다. 가냘프고 나직한 잎을 달고 자라는 것들은 그들대로 서로에게 기대 봄을 부르고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목련의 애처로움은 그 목이 꺾여 땅 위에 떨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과꽃이 그렇고 국화가 또 그렇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그 색을 잃지 않는 일편이 있다.     꽃과 사람만이 아니다. 풍경 또한 그렇지 않을까. 풍경도 인연이다. 살아 가는 동안 풍경과의 인연은 우리의 걸음을 그리로 향하게 한다. 늘 그 자리에서 인연을 기다리며 봄에는 연두로 초록으로 자라고, 보라로 노을지는 지고 지순한 풍경이 되어준다. 장대비를 쏟으며 폭설을 뿌리기도 하고 잔잔한 파도로 출렁이기도 한다.   오늘도 당신과의 인연으로 새벽이 오고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노을이 졌다. 별이 뜨고 나는 그 별빛 아래 풍경처럼 서 있다. 꽃들이 한없이 어여쁜 이유도, 네가 소중한 이유도, 발걸음이 자꾸 같은 풍경으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인연 때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인연 시간 동안 풍경 나무 아래

2024-06-0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은 내 집입니다

당신은 내 집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 지어진   당신은 내 집입니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아도 걷다 보면 머물러지는 곳 봄의 향기가 떠나지 않고 오월의 초록이 가득 담긴 당신은 내 집입니다 다시 불러봅니다 마지막 날처럼 안타깝고 경이로운 시간 당신은 여전히 내 집이어서 눈을 감으면 더 가까이   선명한 핏줄같이 만져지는 사랑스러운 내 집이어서 마음에 담기로 합니다 원뿔 같은 모난 세상 모난 뿔로 피어나기 싫어 몸 아래로 아래로 꽃 피우는 비밀의 정원, 나의 쿼렌시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랑해 주는 당신은 같은 곳, 같은 시선으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내 집입니다     한낮, 찌는듯한 더위에 몸을 잠시 피했다. 창가에서 바라보니 테크 주변에 나무가 만들어 놓은 두 평 남짓 그늘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어나 데크로 나가 의자를 그늘 밑으로 옮겼다. 작은 테이블을 옮기고 나니 유리컵에 들꽃이라도 담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수수꽃다리 탐스러운 꽃송이를 가졌는데 그 향기가 바람에 실려 산들 내 앞으로 불어왔다. 더위는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늘 위에는 쉼과 새소리와 함께 수수꽃다리 향기가 온몸에 가득했다.     집이란 장소에 대해서 또 이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가? 늘 궁금했다. 집이란 의미가 그냥 사람이 거주 하는 생활 공간 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쩌면 집이란 의미는, 나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편안하게 지켜 주는 것 이외의 것들을 잊거나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아갈 때가 많았다. 당연히 그러려니. 맞아 그게 다야. 그 이외에 다른 건 없지. 더 바라면 욕심이지. 주변을 둘러봐도 다 그렇게 살고 있어. 잘 길든 애완견처럼 때로 사랑도 받고, treat도 받아먹으면서.      집은 그런 게 아니었다. 바로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두 평 남짓 그늘 밑 같은, 그저 햇빛을 막아준 그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해지는, 따져보면 가진 것도 없는데 한없이 누리는 알 수 없는 포만감. 그런 사소한 관심과 작은 행복의 연유가 아닐까? 잘 꾸며놓은 집에 갇힐 수도 있겠다 생각되었다. 문득 집은 지친 나를 반가이 맞아 주는 곳. 상처받은 마음을 싸매고 치유해 주는 곳. 마음이 헛헛해 그리운 마음을 열면 꽃처럼 환하게 반겨 주는 곳. 마주 보고 있어도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정다움이 포말처럼 가득해지는 곳. 한없이 피로가 몰려와도 엄마 품 같이 포근하고 따뜻해 이내 잠들 수 있는 곳.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가슴 설레는 곳이어서. 상처와 아픔의 처진 어깨가 위로 받고 보듬어져 어느새 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어야 한다는, 다름 아닌 그늘 같은 퀘렌시아가 집이 되어야 한다는.   마치 투우장의 성난 소가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 바로 그것이 진정한 집의 개념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루의 피곤이 사라져 버리고 새 날, 새 아침이 기적같이 펼쳐지는 곳이야말로 나의 집, 나의 쿼렌시아, 나의 천국이라 말할 수 있다.   늦은 오후, 나무 밑 두 평의 그늘. 넘어가는 햇살에 나의 쿼렌시아는 누워도 될 만큼 더 넓고 쾌적한 면적으로 확장되었다. 긴 하루가 그 축을 당기며 하루의 펼쳐진 휘장을 서서히 닫고 있다. 조용한 침묵을 깨고 오후의 끝자락을 잡아줄 심금의 첼로 선율이 들리는 늦은 오후. 그런 집을 찾습니다. 그런 당신은 나의 집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수수꽃다리 향기 첼로 선율 시인 화가

2024-05-2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뒤란을 찾은 방문객

봄날 햇볕 쨍한 오후. 뒤란을 걷고 있는 오리 두 마리를 보았다. 늦가을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날아가는 오리 떼는 많이 보았지만 나의 정원을 가로질러 저토록 여유롭게 산책하는 한 쌍의 오리는 처음 보았다.     언제인가 호숫가를 산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여러 마리의 오리 떼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긴 목을 내리깔고 내게 달려들어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론 오리 떼가 보이면 멀리 돌아서 가곤 했었다.     그날도 모른 척할까 하다가 급히 식빵을 몇 개 가져와 오리 앞에 던져 주었다. 오리 두 마리는 아무 의심 없이 내가 던져준 식빵을 납작한 주둥이로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리곤 데크로 올라온 나를 여전히 따라왔다. 한동안 나는 식빵을 뜯어 주었고 배가 고팠는지 오리는 허겁지겁 그것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한 마리는 검은 머리에 짙은 녹색의 띠를 두른 모습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갈색의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뒤란을 걷는 그들의 모습을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애증하는 정원을 그들도 사랑한 것일까? 오리가 거닐고 간 오후 불현듯 나의 정원을 찾아온 방문객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동네 뉘 집 개인가 했다. 늑대가 이곳에 나타날 리 만무하지만 보기에도 몸집이 작고 매서운 눈도 아니었다. 혹 승냥이? 마치 신들린 걸음걸이로 와서는 힐끗 데크 밑을 쳐다보고 있었다. 셀폰을 가지러 간 사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걸음도 휘청휘청. 배도 등가죽에 붙어 있는 걸 보니 무척 허기져 보였다. 토끼를 쫓아 이곳까지 왔다. 포기하고 돌아간 모양이다.     그뿐일까? 도톰하고 맵시로운 긴 꼬리를 가진 여우도 어느 초봄 어스런 저녁 나절 뒤란을 방문해 나무숲 어두움으로 사라져 버린 적도 있었다. 요즈음은 보이지 않지만 동네 어귀에서 종종 보았던 사슴 한 쌍도 늘씬한 몸매로 귀를 쫑긋거리며 한동안 머물렀었다.     한 번은 딱새란 놈이 덱크 펜스 위 나무그늘 아래 집을 짓고 새끼 4마리를 부화시킨 적도 있었다. 그 과정을 우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었다. 딱새는 먹이를 날라다 주며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부리를 치켜든 새끼들을 어찌 알아보는지 번갈아 먹이를 주었다. 나는 가까운 곳 벤치에 앉아 저들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을 품고 있을 때에도 머리만 빠끔히 내보일 뿐 반나절을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오랜 시간 체온을 전달해 주는 듯했다. 먹이를 물어올 때도 바로 집으로 날라오지 않았다. 먼저 근처로 날아와 앉은 후 짧은 시간의 공백을 두고 집으로 왔다. 모두 자라 날아간 후 새집을 치우면서 딱새의 지긋한 큰 눈의 사랑과 동그란 몸집으로 뒷동 알을 품고 있던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더 기막힌 일은 기르지도 않은 토끼가 우리 집 데크 밑에 살림을 차렸다는 일이다. 몇 마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들락거리는 토끼 가족은 짐작컨데 6마리 정도는 될듯해 보였다. 뒤란을 주 무대로 옆집 나무숲을 넘나드는 토끼들은 평화롭게 엎드려 연두 푸른 잎들을 뜯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데크 밑이야말로 안전하고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 천혜의 요새가 아닐까 생각된다.     새벽잠을 깨우는 건 새들의 지저귐이다. 노래인지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잠결에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는 머리를 맑게 정화해준다. 어느 나뭇가지에 앉았는지 알 수 없지만 새벽 하늘 가득히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다람쥐들이 나무를 탄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한 마리가 오르면 어느새 다른 한 마리가 그 뒤를 쫓는다. 한국에서 보는 줄무늬가 있는 예쁜 다람쥐가 아니라 좀 거칠고 사나운 느낌의 다람쥐라 할까?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구석구석 땅을 파고 숨기느라 정신이 없다. 제가 숨겨놓은 그 많은 먹이를 모두 찾기나 할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 한밤중엔 또 얼마나 예측불허의 방문객들이 다녀갈까? 잔디 위에, 나무 위에, 숲 사이에, 덱크 주변에, 꽃들 사이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석구석에까지 저들의 수많은 발자국들이 남겨져 있겠지.     그 위를 걸으며, 그 나뭇가지 사이의 노래를 들으며, 꽃밭 꽃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겨우내 썰렁했던 화분에 꽃모종을 만들며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떠 올린다. 올봄 뒤란을 찿은 첫 번째 방문객이 되어주기를, 당신의 발자국과 숨소리를 뒤란의 곳곳에 남겨주기를……     당신의 마음을 훔치려다 당신에게 잡히고 말았네 당신의 마음은 지남철 같아 근처만 서성거려도 붙어버리고 마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방문객 나무숲 어두움 옆집 나무숲 발자국과 숨소리

2024-05-1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꽃, 말, 새의 봄 소풍

영화 한편을 보았다 ‘내사랑‘, 캐나다의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스토리였다. 모드 루이스에게는 오두막 전체가 캔버스였다.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하나와 자신을 떠나지 않을 한 사람을 기다리는 오두막이 그녀의 세상이었고 우주였다.     꽃을 그리다 보면 꽃길을 만나게 되고 그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절망의 어두움에서 멀어져 향기로운 꽃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선천성 류머티즘이라는 희귀병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그마한 키에 가슴에 붙는 턱, 움츠러드는 어깨, 손가락마저 굳어져 가는 아이여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엄마와 함께 그리며 행복해했던 그녀는 자연스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말이 끄는 눈썰매가 눈 덮인 언덕을 오르고, 깜깜한 밤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그리며 그녀의 마음엔 한장 한장 고운 그림이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기쁨이었고 후에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32살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2년 뒤 어머니마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오빠 찰스가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그녀를 이모 집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자신을 무시하는 이모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같이 살거나 집안일 해줄 사람 구함‘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그곳에서 까칠한 에버렛 루이스를 만나 얼마 후 낚은 양말 한 쌍처럼 결혼하게 된다.     에버렛은 생선을 팔아 살고 있는 어부였는데 아주 작고 전기도 없는 어둠침침한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둡고 칙칙한 오두막을 환하고 아름답게 색칠해 갔다. 칙칙한 부엌 벽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 유리에, 들어오는 문에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에버렛은 그녀가 온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것에 화를 내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그림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5센트에 팔던 기억을 살려 틈틈이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졌지만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꾸밈없고 따뜻하였다. 오두막 외벽 나무에도 꽃 그림을 그려 마을 주민들에게 그녀의 오두막은 사랑 받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마침내 캐나다 CBS 방송에서는 그녀의 삶과 그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굽은 뭉툭한 손으로 그림에 몰두하였다. 캐나다 전역뿐 아니라 미국까지 그녀의 명성이 퍼져나갔다. 캐나다 총리,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그녀의 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이미 그녀는 유명화가가 되어있었다.     주문이 밀려왔지만, 처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그림 가격은 5달러, 10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녀는 물질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과 행복을 나누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알 필요도 없는 듯 돈을 더 주고 많이 사겠다는 사람들에게도 한 두 점 이상은 팔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그림을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 주기 원해서였다.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붓 한 자루면 돼요.“ ”내 인생 전부가 액자 속에 있어요.“ 그녀는 처음과 끝이 같은 여자였다. 좁은 공간에서 시작된 그녀의 행복은 거리로 동네로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67세의 나이에 그녀는 작은 오두막과 그림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작은 오두막에서 남편 에버렛과 욕심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부와 명예에 찌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고, 단순한 그녀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선생님이요, 또 아름다운 화가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삶의 어두움을 극복하고 고양이, 꽃, 말, 새와 평생의 친구로 함께한 캐나다가 사랑한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작은 오두막이 그녀의 가진 모든 것이었는데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그 행복한 시간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기고 떠났다. 그녀를 생각하는 한낮의 오후는 지나가고 있고 애꿎은 나무는 머리에 자꾸 꽃을 피운다. 꿈을 꾸라고, 행복하라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소풍 오두막과 그림들 에버렛 루이스 오두막 외벽

2024-05-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 5개의 명제

1    짙은 녹색의 계절이 오기 전 연둣빛 봄날이 좋아요. 이때가 제일 아름다울 때지요.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도 대견하고요. 봄빛 햇살에 얼굴 내미는 꽃망울들도 자랑스러워요.   목련     한날의 햇살이 푸른 밤 별빛으로 돌아 뜰 안 가득 펼친 서러움 한 뼘 빛으로 충분한 자리 숨을 고르는 설레임으로 한껏 부푼 하얀 봉오리 서둘러 떠나려는 너는 얼굴을 들어도 좋으리 느리게 피어도 좋으리 봄 길에서 만나는 쉼이 되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 하루가 되어도 좋으리    2  여행은 속삭임과 더불어 가는 거라네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막 들려와요. 바람도, 꽃도, 나무도, 바다도 속살거려요. 파란 하늘에 이름 석 자를 쓰다 말고 날아가는 새 무리를 바라보았어요. 모든 것이 떠나도 봄은 어김없이 곁에 오고 있어요.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오후가 사라져가요. 꽃이 피지 않은 거리에도 향기가 나요.   봄날 아침     봄날 아침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어요 나뭇가지 설레임으로 푸릇   물오른 새색시이어요 바쁠 곳도 없이 너를 만나려 나서는   지극한 일상의 기쁨이어요   두 팔 벌려 안기어 오는 사랑스런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 아침은 너의 하루가 시작되는 하늘이어요 나의 하루도 그 길 따라 펼쳐져 눈가에 흐려오는 눈물이어요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반가운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허허한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 아침은 하얀 꽃망울 품고 있는 언덕이어요 저미도록 꽃잎을 접고, 펼치며 제 손으로 뿌려 놓은 향기 이어요 깊이 들이마시면 막혔던 숨 터지는 향기론 봄날 아침 이어요    3  사진을 찍을 때 귓가에 수신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어요. 마음속에 울림으로 담겨져 와요. 기억해 달라 이야기 안 해도 자동으로 그 시간 그 풍경으로 스며들게 되요.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의 호흡과 체온, 표정이 어우러져 있어요. 사진 속에는 안간힘이 담겨 있어요. 소리 없는 몸부림이 있어요. 그것이 들풀이든, 산비탈의 집들이든,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간이역이든, 어딘가를 향하는 걸음이든 절실한 안간힘 속에 담겨있어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에요.   안간힘   물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나 봐 짧은 시간 긴 꿈속에 있었네 산을 끼고 바다가 보이는 한 폭의 그림 꽃마당에 꽃들이 잠들어 있네 두 팔 뻗어 감은 눈 만져주었네 딜빛에 눈을 뜨니 버드나무 가지 어깨를 스치네 그러니 사랑아 잘 있거라 그리고 이별아 잘 가거라    4  터널을 빠져나가자마자 빛이 왔어요.   은빛 바다도 함께 왔어요. 덩그렇게 남겨진 긴 터널 앞에 생생한 기억으로 돌아온 우리의 정원이 거기 있었어요. 저 빨간 양귀비꽃 무슨 영화가 있길래 저리도 붉게 물들었을까?   봄은 흐르고   그리 아프시어도 붉게 피시려고요 나를 버리어도 사랑 하시려고요 내 속 피멍이 들어도 참으시려고요   봄은 흐르고 홀로 뜨거워 스스로 일어서는 여린 꽃망울 송송 맺힌 그리움으로 그대를 향해   깨어있어 붉게 피어나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명제 향기론 봄날 연둣빛 봄날 봄날 아침

2024-04-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남겨진 바람이 되는 것이네

알프스의 숨겨진 보석 동쪽 계곡 돌레미티(Dolomiti)로 가는 길은 너에게로 가는 길과 닮아있네. 기억나지 않는 일을 기억하려는 시간 동안 나무는 숨 쉬지 않았고 들꽃은 개화를 멈추었네. 2.000 고지 높이의 산행은 숨이 차지 않았네. 보는 사람들과 누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난 왜 마음이 아파지는 걸까?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 순 있을까? 오랜 시간 누리고 살지 못해 내게 또 미안하네. 하늘은 산등성이를 내려다보고 산에는 작고 앙증한 꽃 비올라, 꽃 한 송이 흐드러진 마음 보라색 꽃잎으로 펼쳐 보듬고 보라색 메아리, 비올라 꽃 한 송이.   산을 오르다 보면 산이 나를 데리고 가네. 푸른 가지 흔들며 오라 하네. 산에 잠깐 머무는 동안 발끝으로 수액이 흐르고 여러 장의 꽃잎이 피어나네. 하늘이 맞닿은 곳에 구름계단을 만들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덩그렇게 산봉우리와 구름과 나만 남았네. 맞은편 산등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나는 이곳에, 또 저곳에도 살고 있었네. 버려진 땅은 없었고 눈이 녹아 내리는 물가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네. 소리가 사라져 버린 땅, 그림자 지나간 숨결과 걸음 흔들어 깨워도 기척이 없네. 누구는 집으로 가고, 누구는 집을 떠나고 있네.   산을 내려오면서 집으로부터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네. 차창 밖으로 너를 보고 있네. 너는 산 정상을 향해 걷고 있네. 멀어지는 너를 돌아다보았네. 햇살 아래 사라져 버린 너는 눈 덮인 알프스로부터 내려온 보라색 메아리가 되었다. 나의 사랑이 죄가 된 날부터 산 속에 피어난 비올라 한 송이 안개처럼 내 속에 살아가고 있네.   독수리의 높은 창공을 날았네. 아래는 아찔했었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게 신기했네. 성당의 뾰족한 탑 위 십자가 고공 낙하를 시작했네. 양팔로 방향을 조절하고 오른발은 엑셀레이터, 왼발은 브레이크 도착한 곳은 알프스 산골 마을, 작은 돌멩이로 높지 않은 담장을 쌓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알프스 작은 정원엔 들꽃이 피기도 하였네.   한때는 사랑에 목이 메었네. 밤낮 그의 이름에 토씨를 달고 그의 주변에 꽃씨를 뿌렸네. 그에게 나는 하루가 열리는 호흡이었다가 버린 후 어딘가에 남겨질 먼 발 등성이가 되기도 하였네. 나의 발끝부터 사라지는 꿈. 거의 몸의 절반이 보이지 않았네. 백포도주 한 잔을 비울 즈음 나는 사라졌네. 콘도라를 타고 구름 운하를 건너는데 신기하게도 우린 한 배를 타지 못했네. 두리번거렸지만 그는 내 곁에 없었네. 나는 그의 향기를 가져와 들꽃이 되었네. 베네치아의 새벽이 되었네.   하늘에 오래 남겨진 구름은 없네. 늑대가 양의 다리를 물었다가 두 마리의 악어가 되기도 하고 저무는 노을로 피어나기도 하였네. 누구나 그런 거라네. 처음 그 설렘으로 몇 년은 버티고 몇 년은 지워져 가는 것이네. 알프스 설산 눈물처럼 흘러내려 한 번도 손 잡지 못한, 막연히 따뜻했을 다른 하늘, 다른 풍경으로 마주 잡는 것이네. 백팔번의 천둥이 치고 셀 수 없는 별들이 저물어도 나는 그 앞에 그는 내 앞에 무엇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네. 출렁이는 물결 위에 내려놓은 시간, 그 시간이 여전히 나를 끌고 가고 있네. 베네치아에 남겨진 바람이 되는 것이네. (시인, 화가)     Kevin Rho 기자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람 알프스 산골 보라색 메아리 마음 보라색

2024-04-2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물의 나라 베네치아

밀라노에서 맞이한 밤은 짧고 생소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은 왔고 이어 아침이 밝았다. 시카고 근교의 에반스톤이나 하이랜드 파크의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7시간의 시차가 있을 뿐 하늘과 구름과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마저 다른 점이 없다. 앞으로 10일 동안 나도 함께 분주히 걸으며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며 찬란했던 로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한다.     4세기 이후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해양도시로 발전한 베네치아(베니스)로 향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왼쪽 창문으로 시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따라왔고 멀리 여럿의 산등성이 뒤로 눈 덮힌 알프스 산들이 보인다. 스위스와의 접경을 좌로 돌려놓고 버스는 3시간여를 달리고 있다.     붉은 기와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뒤론 둥글고 뾰족한 탑을 가진 고대 성당 건축물이 보인다. 고대 화려했던 로마의 거리 풍경이 오버랩핑 되었다. 빨간 깃털을 단 투구와 가죽옷을 입은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십 수세기에 걸쳐 유럽과 서아시아를 지배하며 위세를 떨치던 로마도 저물고 이제는 이탈리아라는 그리 크지 않은 반도 국가로 남겨지게 되었다. 화려했던 문화유산과 3.000고지의 아름다운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100년 된 건물은 현대 건물로 분류될 만큼 도처에 500년, 600년 된 건물이 즐비하다. 도시마다 하나님을 기리는 성전을 건축하였는데 건축 기간이 100년을 넘기기도 한 성전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 외양이 수려하며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불가사의 건축물들이 많다.     첫날 방문했던 밀라노 성당의 위엄도 대단했다. 성당의 한 면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성전 내부의 장식들도 대단하였는데 이는 세공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가 디자인, 가구, 패션의 첨단 국가로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도시의 작은 골목에도 구운 벽돌과 세라믹 타일 바닥으로 포장된 곳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보수함으로 옛모습을 보존하는 배려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3.850미터 철도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 섬으로 들어간다. 119개 섬으로 연결된 베네치아는 189개 운하, 450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 섬들을 곤돌라라는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하게 된다. 쾌속정 같이 생긴 Water Taxi가 분주히 물살을 가르고 있다.     입학 동기 정경연(홍대 미대 대학원장)이 금상을 수상했다고 수상 작품과 똑같은 염색 작품을 보내주었던 비엔나르 미술제, 강수연(배우)이 여우 같은 연기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중세 시대 이곳에서의 교육은 귀족이나 사제들에게만 허락되었다고 한다. 음악교육을 받고 싶었던 비발디는 평민에서 사제의 신분으로 전환해 음악교육을 받았고 후에 사계(Four Seasons)로 음악성을 인정 받기도 하였다.     300년이 넘은 CAFE Florian에서 생음악과 함께 젤라또로 갈증을 해소했지만 물의나라 베네치아의 하루는 온통 물, 물, 물투성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베네치아 물의 불가사의 건축물들 밀라노 성당 현대 건물

2024-04-1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은

봄날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어요 나무가지 설레임으로 푸릇 물오른 바쁠 곳도 없이 너를 만나려 나서는   지극한 일상의 하루 두 팔로 안아보는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너의 하루가 시작되는 하늘이어요 나의 하루도 그 길따라 펼쳐져 눈가에 흐려오는 눈물이어요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반가운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하얀 꽃 망울 품고 있는 언덕이어요 저미도록 꽃잎을 접고, 펼치며 제 손으로 뿌려 놓은 향기 이어요 깊이 들이마시면 막혔던 숨 터지는 봄날 아침이어요     새소리가 들리는 곳, 뒤란이 바라다보이는 데크에 앉아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온몸을 나른하게 녹이고 있다. 둥근 유리 테이블에 올려놓은 Note book에서는 J. Offenbach의 Belle nuit의 달콤한 첼로 음악이 내 마음의 맨바닥을 쓸어주는 듯 봄날 아침의 여유를 수놓고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데크 펜스에 앉았다. 가벼운 몸짓으로 움직이다 물끄러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무엇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듯,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이나 하는 듯 머리를 떨구기도 하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빛나는 봄날 아침을 함께 즐기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꼭 정지된 시간에 그려놓은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만 정지돼 있는, 흐르지만 움직이지 않는 봄날 아침을 보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볼 때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가시가 엉켜있는 덤불이었다. 실망하여 발걸음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발 밑에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피어있었다. 가까이 보아서 이쁜 꽃이 멀리 떨어져서 보니 민민한 들판이 되기도 하였다. 자유가 멋져 보여 다가갔더니 오히려 단단한 속박이 되기도 하였다. 사람도 별반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 같아서 성급히 생각하고 발을 담갔다가는 물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도 종종 만난다. 오래 지내봐야 한다. 속을 다 내어줄 것 같다가도 이해 못할 차가운 태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 말은 나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들에 접할 때마다 나의 잣대가 아닌 너의 바로미터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시간이 멈추도록 입맞추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날이 져 어두워지면 책 한권을 들고 나와 한 소절씩 되뇌이며 갔던 길을 되돌아 오고 싶을 때가 있다. 읽고 또 읽어 어두운 밤 책을 보지 않아도 낭송이 절로 되는 신기함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느낌으로 받아 안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을 길게 늘이고 싶을 때는 깊은 호흡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내 머리를 차오를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감이 번지는 노을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여여한, 끝이 없는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라는 캔버스에 단순히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관찰을 쏟아 놓는 것이다. 풍경이나 사물이 우리와의 사이에 가려져 있는 것은 우리의 손길이나, 발길이나, 우리의 시선에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함께 보는 나만의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가 다른 지층을 쌓아가듯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지구의 현상을 평생 만지거나 느껴보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나에게서 가려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사물을 넓게, 깊게, 때로는 아주 가깝게, 오랫동안 자세히 경험하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 아닐는지. 나에게 있어 ‘다시 그림이다.’라는 명제 앞에 떨리는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 봄날 아침 나무가지 설레임 첼로 음악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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